일본 퍼시픽리그에 대해서..

 



사진은 각 팀의 홈 구장의 모습입니다.


메이지 진구 구장, 나고야 돔, 요코아하 스타디움

고시엔 구장, 히로시마 시민 구장, 도쿄 돔

오사카 돔, 세이부 돔, 미야기 스타디움

후쿠오카 돔, 지바 마린스 스타디움, 삿포로 돔


(사진 순서대로 썼습니다.) 




센트럴리그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쿄), 주니치 드래곤즈 (나고야), 한신 타이거즈 (효고현 니시노미야市-통칭 오사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요코하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도쿄),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센트럴리그 편을 보시고 싶으시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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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리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사이타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홋카이도 삿포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후쿠오카), 오릭스 버팔로즈 (오사카),


지바 롯데 마린즈 (지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토호쿠 센다이)




(구단 명칭은 소닉님이 재 수정해 주셨습니다. 편의상 지명은 생략하고 진행하겠습니다. 소닉님께 감사드립니다.)


 


세이부 라이온즈


창단연도: 1949년 11월 26일


연고지: 사이타마


홈구장: 세이부 돔


팀 전적: (2008년 10월 4일 기준) 4019승 3525패 320무 .533


리그우승: 21회

(1954, 1956, 1957, 1958, 1963, 1982, 1983, 1985, 1986, 1987, 1988, 1990, 1991, 1992, 1993, 1994, 1997, 1998, 2002, 2004, 2008)


일본시리즈우승: 12회

(1956, 1957, 1958, 1982, 1983, 1986, 1987, 1988, 1990, 1991, 1992, 2004)


팀 변천사:




















西鉄クリッパース (니시데츠 클리퍼스) ( 1950 )
西鉄ライオンズ (니시데츠 라이온즈)( 1951~1972 )
太平洋クラブ・ライオンズ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 1973~1976 )
クラウンライター・ライオンズ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 1977~1978 )
西武ライオンズ (세이부 라이온즈)( 1979~2007 )
埼玉西武ライオンズ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8~ )



개인적으로는 이치로 시절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스 다음으로 좋아하는 구단 중 하나가 바로 이 팀입니다. 무엇보다 요미우리 중심의 야구계였던 80년대, 90년대에 대항하여 나타난 최고의 퍼시픽리그 명문 구단입니다. 특히 80년대 90년대 다수의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도 가고 싶어 하는 구단으로 발 돋음 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요미우리와 일본 시리즈를 꽤 자주 하였는데 요미우리 구단에게 가장 고춧가루를 많이 뿌린 구단이기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요미우리에게 많이 당한 구단이 퍼시픽리그의 두 구단이 있는데 지금의 오릭스 버팔로스와 소프트뱅크 호크스입니다.


팀 로고는 말 그대로 사자인데 일본의 국민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씨의 밀림의 대제 레오에서 가지고 와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소를 클릭하시면 이 팀의 로고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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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팀은 80년부터 2006년까지 A클래스(3부에 설명이 있습니다.)에 들어가 일본 프로야구 신기록을 만들기도 한 구단입니다. 작년 시즌에 5위로 마감해서 그제서야 B클라스에 들어갔죠. 우리에게는 삼성 유니폼과 (얼마 전에 제가 올린 글입니다만) 비슷해서 어느 정도 잘 알려진 구단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도 뛰었던 구단인데 바로 백인천 선수가 75년 타격왕이라는 기록을 남긴 구단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구단이기도 합니다.



현재 내이밍 마케팅을 발판으로 창단한 우리 히어로즈(현 히어로즈)가 창단할 때 내이밍 마케팅은 이전에 이미 실패한 마케팅 방법이다..라는 비판이 일어났었습니다. 그 때 예시로 제시됐던 팀이 바로 이 세이부 라이온스의 전신팀들 이였습니다. 원래 니시데쓰 라이온스 시절엔 교진과 양대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이였지만 니시데쓰가 운영난으로 팀을 매각하면서 새로운 모 기업이 스폰서획득을 목표로 내이밍 마케팅을 사용 하며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 -> 크라운 라이타 라이온스'로 이름을 변경하면서 운영한 경력이 있는 팀입니다. (백인천 선수가 리그 타격왕에 오르던 시절이 바로 이때죠)
하지만 내이밍 마케팅의 한계를 드러내며 세이부그룹으로 매각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데커드 님의 댓글 참조하였습니다.) 




글쎄... 하여간 세이부 그룹이 많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나왔습니다만 최근에 어떠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여러 스타 선수가 있지만 두 선수만 한 번 꼽아보겠습니다. 한 때 대만 선수가 소속 되어 있었던 구단이기도 하였는데 80년대를 풍미했던 곽태원이라는 선수가 바로 이 팀 소속이었습니다. 91년 MVP 출신인데, 아래 동영상은 87년 일본 시리즈에서 활약한 곽태원 투수의 동영상입니다. 5분 정도 되는데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일본에서 활약하는 대만 투수가 한 때 3명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곽태원의 일본명이 카쿠타이겐, 곽원치가 카쿠겐지, 이름이 비슷해서 상당히 일본사람들도 햇갈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신의 카쿠리까지 해서 three-kaku로 불렸다고 하네요. (최형석 님의 댓글과 네이버 지식 검색의 내용을 참조하여 재구성 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동영상은 주니치 소속의 곽원치 선수의 것인데 끝내기 홈런을 기록한 장면입니다.

한 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91년 한일 슈퍼게임에 등장하기도 하였죠.

(최형석 님의 댓글 참조 후 재구성 하였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였지만 아키야마 고지 선수가 이 팀 선수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홈런 세레모니가 아주 독특했던 선수입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초반부터 시선을 끄는 행동을 보여줍니다.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선수는 400홈런 300도루를 기록한 선수인데 유일하게 이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바로 장훈 선수 (504홈런 311도루)입니다. 그리고 85년부터 2002년까지 올스타전 연속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기도 한데, 역대 3번째로 가장 많은 올스타전 출장 기록을 세운 선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 야구 최초로 40-40클럽을 만들 수 있기도 하였지만, 43홈런 38도루에 만족을 해야 했기도 했었던 선수입니다. (박성호의 일본프로야구 사이트에서 기록을 참조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이부 최고의 영웅 중 한명으로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꼽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고 얼마 전 이치로까지 참여하여 정말 화려한 은퇴식을 치루었죠.) 86년부터 96년까지 (맞나 모르겠습니다..) 11시즌 세이부의 황금기를 같이 한 4번타자였죠. 거인에 뽑히고싶어서 드레프트장에서 거인에게 픽을 받지 못하자 울음을 보이고 거인과의 제팬 시리즈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한 순정파 남자였습니다. 당시 요미우리로 이적 후 당시 K-K콤비였던 구와타와 정말 어색했었는데 구와타가 먼저 다가가 사과하고 챙겨주어서 과거와 거의 가까운 관계를 다시 만들었다고 하는 스포츠 2.0의 인터뷰 내용도 떠오릅니다. 무관의황제 그리고 한국계가 아닌가해서 더욱 한국에서 유명해진 일본 고시엔 최고의 천재중에 한명인 기요하라가 세이부에서 활약하던 그 모습 잊기 힘들다고 봅니다. 거인에서 자주 서러움을 당했던 그였기에 더 드라마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는옥후다님의 댓글 참조후 재구성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타난 현재 보스턴에서 뛰고 있는 마츠자카가 스타이고 현재는 나카무라 히로유키 (유격수) GG 사토 (외야수) 와쿠이 히데아키 (투수)로 이어지는 스타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래는 마츠자카가 고시엔에서 홈런을 친 동영상인데 투수가 우리에게 낯이 익죠?







 




(참고로 지지는 일본어로 아저씨를 뜻하죠. 사토 라는 성이 일본에서 가장 흔한 성이라 뭔가 특별해 보이고 싶었던 지지 사토는 자신의 별명인 아저씨(노안이라 그렇다네요)를 붙여서 선수 등록명으로 사용했답니다. - butterb 님의 댓글 참조)




아무튼 이 팀은 80년대 그리고 90년대 황금기를 맞이하였고 그 후에도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올린 구단이기도 합니다. 04년에는 퍼시픽리그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리의 플레이오프 제도)를 다 통과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해 명문 구단으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과거 모리 감독 시절이던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 세이부 왕조를 구축하였는데  90년대 초반 타선에서는 아키야마-기요하라-데스트라데, 이른바 AKD타선이 이끌었고, 투수는 두명의 와타나베와 이시이, 쿠도, 곽태원, 완벽한 5인로테이션이 돌았으며 포수 이토 선수까지 나와 세이부의 황금시대를 도저히 무너뜨릴 팀이 없었습니다. (붉은사막, 최형석 님의 댓글 재구성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06년도 구단이 발표한 돈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감사 결과가 나오는 바람에 (이게 세이부 선수단에서 감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매년 이렇게 돈을 어디다 썼는지 감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다음해 의욕을 상실했는지 리그 5위로 마감을 하게 됩니다.


세이부 구단의 홈구장인 세이부 돔은 전에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본래 뚜껑이 없는 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돔 열풍이 불어서 뚜껑을 만든 구장인데, 이게 오히려 중간만도 못 한 구장으로 변신한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관중 감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구장 관련 글은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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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세이부 황금시절이었던 80,90년대 우승 기념 사진입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창단연도: 1938년 2월 22일


연고지: 후쿠오카


홈구장: 후쿠오카 돔, 100m-120m-100m, 48000명, 지붕 개폐식 돔


팀 전적: (2008년 10월 4일 기준) 4454승 4118패 315무 .520


리그우승: 13회

(1946, 1948, 1951, 1952, 1953, 1955, 1959, 1961, 1964, 1965, 1966, 1973, 1999, 2000, 2003)


일본시리즈우승: 4회 (1959, 1964, 1999, 2003)


팀 변천사:




















南海 (난카이) (1938가을~1944.5.31)
近畿日本 (긴키 니폰) (1944.6.1~1944말)
近畿グレートリング (긴키 그레이트링)  (1946~1947.5.31)
南海ホークス (난카이 호크스) (1947.6.1~1988)
福岡ダイエーホークス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89~2004)
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5~ )





홈런왕 왕정치가 (일본명: 오 사다하루) 감독으로 있는 팀입니다. 특이하게 선수들보다 감독이 더 인기가 있는 구단인데 감독이 선수시절 대스타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해 왕정치 감독은 은퇴를 선언했는데 암 수술 후 급격하게 몸이 쇠약해진데다 건강이 악화된 모양입니다. 그리고 팀 성적이 계속 상위권을 유지하다 올 해 5위를 기록하면서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95년부터 팀을 맡아왔으니 장수하신 감독님이시죠.


과거 소프트뱅크 전신 오사카 난카이(南海) 시절에는 리그 우승을 많이 해서 상당한 명문구단이었는데 (리그 우승 횟수로 따지면 세이부, 소프트뱅크, 오릭스가 서로서로 많이 나누어 가진 편입니다.) 그만 일본 시리즈 상대가 가장 강력했던 시절의 요미우리와 많이 붙는 바람에 정작 일본시리즈에서는 별 재미를 못 보던 구단이었습니다. 65년부터 74년까지 당시 준우승만 3회를 했죠. (오릭스의 전신이었던 한큐 브레이브스는 일본시리즈 준우승만 5회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 동안 침체기에 빠져있었는데 1989년 ‘다이에’라는 대형 유통업계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오사카에서 후쿠오카로 연고지이전을 하게 됩니다. 현재도 오사카에 가면 과거 난카이 호크스 시절을 잊지 못해 소프트뱅크 호크를 응원하시는 팬들이 꽤 많습니다. 그만큼 과거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죠.


훗 날 소프트뱅크가 구단을 인수 했는데 아시다시피 구단주는 한국계의 ‘손정의’입니다. 일본 방송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프트뱅크 휴대전화 광고가 굉장히 자주 나오죠.


1999년 당시 한국인 3총사가 활약을 한 주니치와 일본 시리즈를 붙었는데 당시 도쿄 연고지가 아닌 팀 끼리 붙은 것이 1979년 이후 20년 만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00년에 일본 시리즈에서 요미우리와 상대를 하였는데, 당시 ‘나가시마의 요미우리 대 왕정치의 다이에’라는 기사를 내 세워 흥행몰이를 하였습니다. 시리즈는 당시 4승 2패로 요미우리가 가져갔습니다.


묘하게도 04년도 클라이맥스 시리즈라는 플레이오프 제도가 생긴 이 후 좋은 성적을 올리고도 일본 시리즈에 오르지 못 하는 비운의 팀으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다이에 시절 강력했던 타선을 자랑하는 모습입니다.

희한하게 둘 다 상대가 오릭스였는데 당시 용병 중 하나는 작년에 LG에서 뛰었던 발데스가 이 팀 소속이었죠.


 







 


 





 


소개 해 드리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현재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감독으로 활약 중인 ‘노무라 가츠야’씨가 이 팀 소속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감독 부임 후 입으로 상대방을 긁는 소리를 잘 한다고 하여 고게키(口擊)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죠. 전 부인이 아주 골 때리는 짓도 잘 했는데, 난카이 시절 선수들을 불러놓고 하인처럼 부렸다고 해서 오사카의 여제 (大坂의 女帝)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홈구장은 1993년 완공된 후쿠오카 돔입니다.

디자인은 고대 로마의 격투 경기장을 모티브로 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가 본 경험이 있는 야구장이기도 합니다만, 이 야구장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지붕이 20분 동안 전체 면적의 60%가 열립니다.

그리고 지진과 강풍이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중간에 지붕이 열리다 멈추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붕을 열지 않는데, 이유는 지붕을 한 번 열고 닫는데 우리 돈으로 전기세 및 이런 저런 돈이 약 130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이거는 제가 어디서 보거나 들은 내용인데 출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때문에 구단입장에서는 별 다른 이득이 나지 않아 더 이상 지붕을 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장 안의 시설은 그 옆에 커다란 건물이 있는데 호텔입니다. 그리고 사우나, 헬스클럽도 설비가 되어있고 아이들이 뛸 수 있도록 풋살(FUTSAL) 경기장도 설비가 되어있습니다. (실제로 화이트보드에다 몇 시까지 사용한다고 아이들이 꼬불꼬불한 글씨로 깨알같이 적는 것을 사용 후 지우기도 보기도 하였습니다.) 전문 야구 매장도 있는데 우리나라 동대문 정도의 수준으로 잘 갖추어 놓고 판매를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전문 매장에 들어가서 저도 구경 꽤 오랫동안 한 기억이 납니다.) 


아래 사진은 홈구장의 모습인데, 이번에 조사하면서 몇 가지 특이한 것들이 보여서 한 번 올려보게 되었습니다. 설명과 함께 같이 가보겠습니다. 


(사진 출처는 구단 홈페이지입니다.)




 



(돔 지붕이 열린 모습입니다. 만약 배를 타고 후쿠오카로 들어가시게 된다면 멀리서 돔 구장을 보실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상당히 웅장하죠.)




 



(돔 구장 내부의 모습인데 불이 들어와 있는 곳이 4층에서 6층까지입니다.)





(4층에서 6층의 내부입니다. 이 방은 팀 내 인기 선수의 물품으로 꾸민 테마 방인데 사이토 가즈미, 마츠나카 노부히코, 가와사키 무네노리 선수의 방입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가와사키 선수는 팀 내에서 인기가 상당히 좋습니다. 왜? 잘 생긴 총각이니까요.)




 


(이것은 4증에 있는 라운지와 라운지 뒤의 음식 매장 그리고 아이들 놀이터입니다. 라운지는 세계 최장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것은 비즈니스 용 접대실입니다. 8인, 12인, 16인실이 있다고 하네요.)


 


오릭스 버팔로즈


(이 팀은 과거 오릭스 블루웨이브스와 킨테츠 버팔로즈가 합병되어 나타난 구단입니다. 때문에 두 구단의 역사를 적겠습니다. 다소 길기 때문에 재미 없을 수 있고 지루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박물관에 가서 천천히 둘러본다는 기분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스


창단연도: 1936년


연고지: 고베


홈구장: 고베 스카이마크 스타디움 (과거 고베 그린 스타디움) 35000명 99.1m-122m,99.1m


팀 전적: (구단 통합 때문에 각 팀 별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단 공식 홈페이지에는 08년도 시즌 종료 기준 4549승 4192패 314무 .520이라고 나온 것으로 보아 오릭스 시절의 것만 합해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리그우승: 11회 (1967, 1968, 1969, 1971, 1972, 1975, 1976, 1977, 1978, 1984, 1995, 1996)


일본시리즈: 4회 (1976, 1977, 1978, 1996)


팀 변천사:

















阪急 (한큐) (1936~1946)
阪急ブレーブス (한큐 브레이브스)  (1947~1988)
オリックス・ブレーブス (오릭스 브레이브스)  (1989~1990)
オリックス・ブルーウェーブ (오릭스 블루웨이브스)  (1991~2004)
オリックス・バファローズ (오릭스 버팔로즈) (2005~ )



이치로와 구대성, 그리고 브룸바 선수가 한 때 활동을 하였던 구단으로 유명합니다.

현재‘오릭스 버팔로즈’라는 이름으로 구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오릭스 블루웨이브스 시절의 이야기만 다루겠습니다.)




 


(구대성 선수 승리투수 후 인터뷰 장면.)


 


(DC 야갤에서)


이 구단은 과거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이 최고의 황금기였습니다. 당시 1967년부터 1975년까지 리그 우승을 밥 먹듯이 하였는데 불운하게도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일본 시리즈 9연패를 달성을 하는 때에 당시 난카이 호크스 (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와 더불어 가장 불운한 팀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습니다. (한큐 5회 난카이 3회 일본시리즈 준우승했습니다.) 그 후 84년에도 우승을 차지했으나 당시 히로시마에게 밀려 또 일본 시리즈 준우승에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참고로 한신도 법적으로야 오사카연고이긴 하지만 회사의 의미 자체가 오사카와 고베를 연결하는 철도의 이름이기 때문에 고베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한신의 '한'은 오사카(大阪)의 阪, 신은 고베(神戶)의 神을 딴 것이고, 무엇보다도 홈구장인 고시엔구장의 소재지가 오사카가 아니라 고베가 속해있는 효고현에 있습니다. 사실 고베라는 도시가 하나의 프로팀이 거주할만큼 큰 도시가 아니라서 오릭스는 자생력에서 조금 문제가 있는 팀이었습니다. 구대성 선수가 처음 오릭스에 갔을때 너무 한적한 도시라서 한숨을 쉬었다죠. 오릭스의 전신팀도 원래 철도회사인 한큐(阪急 : 오사카급행?)라서 한신과 긴데쓰를 피한다고 간게 바로 옆에 있는 도시로 간 것이지 팀의 정서는 오사카를 비롯한 관서지방이라고 합니다. (최형석 님의 댓글 참조했습니다.) 




이 팀에서 꼽을 만한 선수 2명을 꼽아보자면 다들 잘 아시겠지만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리드오프로 활약 중인 스즈키 이치로 선수입니다.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인데 (얼굴도 잘 생겼다고 해서 6툴 플레이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이 선수는 94년 혜성같이 등장해서 한 시즌 최다 안타 (210개)를 기록하였습니다.
당연히 리그 MVP에 리그 최고 타율 신기록인 .385를 기록하였죠. 팀이 한큐에서 오릭스로 바뀌면서 리그를 대표할 만한 스타가 없어 고민 중이었는데 이치로는 그런 고민을 말끔하게 벗어 던져 준 스타가 된 것이죠.




사실 이치로도 처음부터 이름이 이치로는 아니었습니다. 이치로가 93년 주니어올스타전에서 MVP를 차지 할 때 이름은 분명히 스즈키였습니다. 94년부터 등록명에 본명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면서 두 명의 선수가 개명을 했는데 그중에 한명이 이치로, 그리고 또 한 명이 판치라는 선수였습니다. 이치로도 한글로 쓰면 그냥 이치로지만 사실 일본어로는 외래어를 쓸때 사용하는 가타카나 イチロ- 라고 쓰기 때문에 뉘앙스가 많이 다릅니다. 스즈키도 흔한 성이지만 이치로도 우리나라 철수만큼 많은 이름이라 우리식으로 하면 김철수가 CHUL-SU 라고 등록한거나 마찬가지인거죠. 혹시라도 이치로(一郞)라는 이름의 일본인을 만난다면 무조건 집에서 큰아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뒤에 지로(二郞)라고 끝나는 이름은 둘째, 사부로(三郞)라면 셋째라고 보시면 됩니다. (최형석님의 댓글 참조) 




기억하실련지 모르겠지만 90년대 중반에 고베 대지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구장에 가면 간바레 고베!! (힘내라 고베!!)라는 말이 적혀있었는데 이치로라는 선수와 함께 맞물려서 대히트를 기록하였죠. 그 것에 힘입어 95년 리그 우승, 96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하게 됩니다.




이치로 선수가 만든 몇 가지 일이 있는데 한 가지는 바로 성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등록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스즈키는 성입니다. 그런데 너무 흔해서 이름으로 등록하라고 당시 감독이었던 오기 아키라 씨가 (지금은 고인이지만) 시켜서 ‘이치로’라고 등록을 하게 되었죠.




당시 주변에서 썩 좋게 보지 않았는데 아시다시피 워낙에 잘 하니까 그것이 오히려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의 이치로가 만든 신드롬은 바로 외야석 매진입니다. 이치로는 아시다시피 우익수가 자기 포지션인데, 이치로 선수가 뛰는 것을 보기 위해 외야석부터

매진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죠. 오릭스 팀이 원정을 가더라도 이 현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상 최고의 연봉 인상폭을 기록한 선수인데, 당시 800만 엔이었는데, 94년 대기록을 작성 한 후 8000만 엔까지 치솟았던 것이죠. 1000%라는 인상폭을 기록하였습니다.
아마 당시 본인도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감이 오지 않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이치로 선수가 활약을 하였던 동영상인데, 그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되는 것 위주로 올립니다.




본래 이치로는 아마시절 투수출신입니다. 그래서 어깨가 상당히 강견이죠.  

하지만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왜 이치로에 팬들이 미치는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심지어 야구 잘 모르는 저희 어머니도 이치로 이야기 하실 정도면...)





 





 







또 하나 소개해 드리고 싶은 선수는 바로 사상 최초로 시즌 106도루를 기록한 후쿠모토 유타카 선수입니다.


당시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에 달성한 기록인데 거의 나갔다 하면 뛰는 선수였습니다.


88년 은퇴 당시 1065도루를 달성하였습니다.


키가 170이 되지 않은 작달만한 선수인데 도루센스가 타고난 모양입니다.

메이저리그 한 시즌 개인 최다 도루가 104개라고 하는데 그것을 넘겼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자기 발을 1억 엔 보험을 들어놓아 화제가 된 선수이기도 합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이 선수의 은퇴 시합입니다. 당시 대 투수였던 잠수함 투수 야마다 히사시 선수와 같이 은퇴시합을 하였네요.





(선수 시절의 모습. NPB에서)


 





 


홈구장인 고베 구장의 특징이 있다면 바로 장내 아나운서인데 남자가 DJ입니다.

다소 느끼한 목소리로 선수들을 소개하는데 200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장이 재래식 구장이 되어서 가끔 스피드 건이 오작동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하네요.

아래 사진은 고베 구장의 모습입니다.


(출처는 구단 홈 페이지)



참고로 현재 오릭스 버팔로즈는 고베와 오사카 공동연고지역팀입니다. 오릭스가 옛 블루웨이브시절 홈구장인 스카이마크 스타디움(옛 그린스타디움)과 쿄세라돔(옛 오사카돔)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빽볼님 댓글 참조) 현재 공식적으로는 오사카가 연고인 구단이고 서브 연고로 고배를 사용 중 입니다. 그래서 현재 이팀도 고배지역에서는 배신자, 옛 오사카 연고팀 긴테츠 펜들로는 점령군으로 양쪽에서 부터의 비난에 빠진 모습도 있습니다. (데커드 님 댓글 참조)  


 




 


 


 


긴테츠 버팔로즈


창단연도: 1949년 (데커드 님 댓글 참조) 


연고지: 오사카


홈구장: 오사카 돔 (현 쿄세라 돔)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구장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inning.co.kr/bbs/zboard.php?id=board_kbo&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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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전적: 구단 통합으로 인해 현재 찾을 수가 없네요.


리그 우승: 4회 (1979, 1980, 1989, 2001)


일본 시리즈 우승: 없음


센트럴리그에서 요코하마가 만년 하위 팀 이었다면 퍼시픽리그에서는 긴테츠 버팔로즈가 만년 하위 팀이었습니다. 오릭스의 전신 한큐도 본래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하기 전 까지만 하여도 만년 하위 팀이었는데 (그 이후 한큐는 리그 우승을 밥 먹듯이 한 때 하였죠.) 긴테츠의 경우 정말 리그 유지를 위해 하는 수 없이 있는 ‘짐짝구단’이었습니다. 본래 사철(私鐵 일본어로 시테츠) 기업이기 때문에 돈이 적거나 구단 운영이 힘든 구단은 아니었는데 좀처럼 하위권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리그 우승을 해서 올라가면 가장 극적인 장면에 나오는 불운한 주인공 역할은 두 번이나 하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79년 일본 시리즈에서 나온 (히로시마 편에서도 소개 드렸습니다만) 에나츠의 예술 21구 사건이고





하나는 89년에 일어난 가토 투수의 자이언츠 팀에 대한 도발이었습니다.




굳이 해피엔딩을 찾자면 2001년에 나온 리그 우승 결정 역전 만루 홈런인데 그나마 이게 속한다고 해야 할까요?




79년 에나츠 투수의 예술 21구


당시 오사카에서 벌어진 히로시마 카프와 긴테츠 버팔로즈의 최종 7차전이었습니다. 당시 4-3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주자가 나가고 base on balls와 에러까지 합해 무사 만루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때 올라간 투수가 히로시마의 에나츠 유타카 선수였는데 긴테츠는 최악의 경우 1점을 따 내거나 역전해서 일본 시리즈 우승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찬스에서 당시 투수인 에나츠 선수가 스퀴즈를 간파해 버린 것이죠. 그래서 공을 일부로 하나 빼버렸는데 타자가 김재박 감독처럼 개구리 번트 시늉까지 하였지만 실패하여 삼진 아웃을 당했고 스퀴즈 사인이 나와 뛰어 들어갔던 3루 주자는 그만 횡사하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2아웃 상황, 이 쯤 되면 명문 팀이면 안타를 쳐 내었다거나 끈질기게 버티어 투수를 괴롭혔겠지만 긴테츠는 그럴 만한 팀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2아웃이라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다음 타자가 삼진을 당해 시리즈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습니다.









2분 24초부터 보시면 됩니다. 몇 장면 안 되지만......




89년 가토 투수의 지나친 도발


당시 89년 긴테츠는 2위 오릭스 브레이브스와 승률 1리 차이의 혈투 끝에 간신히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센트럴리그의 우승팀은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는데 9게임차로 여유 있게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느긋하게 일본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었죠. 간신히 따돌리고 올라온 팀과 느긋하게 준비하고 올라온 팀과의 대결은 사실 불 보듯 한 것이었습니다. 이거는 바보가 아니면 요미우리가 우승 그냥 가지고 가겠구나 하는 시리즈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어라? 이게 웬걸? 긴테츠가 당시 홈구장이었던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4-3, 6-3, 도쿄돔에서 3-0으로 이긴 겁니다. 긴테츠 구단은 당시 천하의 요미우리를 상대로 1승만 더 거두면 우승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요미우리 구단은 그 때 까지 일본 시리즈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구단이 한 번도 우승은 고사하고 짐짝 취급 받는 구단에게 자존심을 헌납하게 되는 상황 직전 이었습니다.




그런데 3차전을 긴테츠가 이기고 나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투수가 ‘가토’라는 투수였는데 그 날 승리투수가 되어 인터뷰를 하는데 그만 이렇게 말을 한 것이죠.




“요미우리? 별 거 아닙니다. 오히려 롯데 타선이 더 무서워요.”




이게 기폭제가 되어서 요미우리 선수들의 투지를 끌어 올린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후 도쿄 돔에서 5-1, 6-0으로 이긴 요미우리는 원정길에 올라 3-1, 8-5로 뒤집기 쇼를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묘하게도 그 인터뷰를 한 가토 투수가 7차전 패전투수가 되었습니다.




01년 긴테츠 이테마에 (‘박살내버려!!’의 오사카 사투리)타선의 끝내기 만루 홈런 리그 우승


일본 프로야구 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힌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거는 설명보다 동영상으로 보시는 것이 더 감동적 일 듯합니다.

아래가 바로 그 동영상입니다.









(들어보시면 오바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인상적입니다.)




당시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한 이 팀은 드디어 12년 만에 리그 우승을 노리게 되었습니다. 2대 5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만루 찬스가 온 것인데 당시 감독이 기타가와 선수를 대타를 내었습니다. 사실 몸이 좋지 않아서 선발 라인업에도 빠진 선수였는데 그냥 단타 하나 쳐 내라는 기분으로 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그랜드 슬램으로 결말이 나 6-5로 경기를 뒤집고 리그 우승을 확정짓게 됩니다.




참고로 이 해의 긴테츠는 리그 최악의 투수력과 리그 최강의 공격력을 보여준 팀이었습니다. 방어율 4.98로 리그 최하위였는데 약한 투수력을 가공할 만한 장타력으로 메꿔버렸습니다. 포수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 2자리 수의 홈런을 기록하였고 (나카무라 노리히로-45홈런, 로즈-55홈런) 결국 210홈런이라는 숫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당시 리그가 ‘타고투저’라는 점을 감안해도 살인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 공격력을 바탕으로 75승 중 43승을 역전승으로 끌어내 ‘미라클 긴테츠’라는 말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01년도 일본 시리즈는 ‘후루타를 중심으로 한 야쿠르트의 방패냐 나카무라-로즈를 중심으로 하는 창이냐’로 관심이 모아졌지만 후루타의 노련한 리드 때문에 2차전 9점을 낸 것을 제외하고는 3점도 뽑지 못 하는 빈타에 허덕이다 1승 4패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그 당시 만루 홈런을 치고 뛰어다니는 모습의 기타가와 선수입니다.




 


제가 꼽는 동영상 베스트이기도 한 순간입니다.


(출처: 일본프로야구협회 홈페이지)


 


주요 선수는 누구보다 이 선수가 우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처: 일본프로야구협회 홈페이지)



바로 노모 히데오 선수입니다.

당시 뛰는 모습의 동영상입니다.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 대표로 나와 서울 올림픽 은메달을 수상하였습니다.

사회인 야구 소속 선수 출신입니다.

우리로 치면 예전의 포철이나 농협 출신의 선수였죠.


 





당시 프로선수 이후 처음 선발 등판이었는데 17탈삼진을 기록했죠.


 





노모 대 이치로입니다.


 


또 하나의 선수를 꼽자면 바로 이치로를 키운 코치입니다.

한국계인데 아라이 선수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교타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동영상 한 번 보시겠습니다.







이 팀은 구단 운영 적자가 눈에 띄게 불어나 결국 견디지 못하고 04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라집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04년 마지막이 된 버팔로즈 구단 팬들의 마지막 응원가를 담은 동영상입니다.

팬이 직접 찍어서 올렸네요.









이거는 방송에서 나온 게임의 일부입니다.

경기 거의 말미에 나오는 모습이네요.

오릭스도 블루웨이브라는 이름도 마지막이었던 순간입니다.







 


일본햄 파이터즈


창단연도: 1946


연고지: 삿포로


홈구장: 삿포로 돔 42122명, 야구, 축구 겸용경기장, 100m-120m-100m, 야구장에서 축구장으로 변하는데 5시간이 소요, 2002년 월드컵 때 독일 대 사우디아라비아(6월 1일), 이탈리아 대 에콰도르(6월 3일),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6월 7일)의 조별리그전이 있었음.


팀 전적: (2008년 10월 6일 기준) 3796승 4220패 313무 .474


리그우승: 4회 (1962, 1981, 2006, 2007)


일본시리즈: 2회 (1962, 2006)


팀 변천사:


























セネタース (세네터스)( 1946 )
東急フライヤーズ (도큐 플라이어스) ( 1947 )
急映フライヤーズ (큐에이 플라이어스) ( 1948 )
東急フライヤーズ (도큐 플라이어스)( 1949~1953 )
東映フライヤーズ (도에이 플라이어스)( 1954~1972 )
日拓ホーム・フライヤーズ (니타쿠홈 플라이어스) ( 1973 )
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 (니폰햄 파이터스)( 1974~2003 )
北海道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 (홋카이도 니폰햄 파이터스) ( 2004~ )



야구장에서 축구장으로 바뀌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과 야구장의 모습. 삿포로 돔은 삿포로 시 외곽에 있습니다.








 




 


(사진 출처: 동아 엔사이버)






적지 않은 역사를 가진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하위권으로 더 많이 쳐져있었던 바람에 별 다른 성적을 내지 못 했던 구단입니다. 실제로 그런 좋지 않은 역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햄 파이터즈 홈페이지에 가 보면 삿포로 시절 5년간의 구단 역사만 찾을 수 있을 뿐 지난 60년에 가까운 기록들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 팀은 과거 도쿄가 본거지였는데, LG, 두산*두산, LG처럼 한 구장을 서로 다른 팀이 일정을 바꾸어서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같은 구장을 쓰는 다른 팀이 다름이 아닌 요미우리 자이언츠인 바람에 항상 관중부터 시작해서 성적까지 비교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나마 도쿄를 연고지로 하는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요미우리로 인해 반사이익을 누리기도 할 때가 있고 90년대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관중들이 많이 들어차기라도 했지만 일본햄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가 열리는 도쿄돔은 언제나 꽉 들어차지만 일본햄이 열릴 때의 도쿄돔은 절반 채우는 것도 힘들어 했었습니다. 저도 겪었지만 NHK에서 퍼시픽리그 경기인 일본햄 경기를 도쿄돔에서 하는 것을 보게 되면 텅 빈 구장에 나팔 소리만 크게 울려 퍼지는 경우가 많아 보기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찬밥 신세를 면하기 힘들게 되자 구단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연고지 이전입니다. 도쿄라는 이점을 성적이 좋지 못해 살리지도 못 했지만 누리지도 못 했던 이 구단은 03년을 끝으로 04년부터 삿포로로 옮기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홋카이도 주민의 70%가 설문조사 결과 당시 자이언츠 팬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더라도 거기서도 찬밥 신세가 되기 쉽지 않겠느냐’라는 이야기도 나왔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사실 홋카이도는 야구를 하기 적당하지 않은 지역입니다. 그것은 기후 탓인데, 여름이 길지가 않고 저녁이 되면 서늘하다 못해 때로는 춥다는 느낌마저 받는 동네여서 간혹 방문경기를 (자기 연고지가 아닌 곳에 가서 3일 서비스 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올 해 제주도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경기를 했었죠.) 갖는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야구에 목마를 수밖에 없었는데, 02년도 월드컵을 위해 삿포로 돔을 지으면서 기후문제를 해결하게 되었고 이것이 연고지를 옮기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하지만 연고지를 옮기면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일 야구교실 그리고 직장인들에게는 7시가 넘어가면 입장료를 반값으로 할인해 주는 행사 등 뿌리내리기 위해 온 힘들 다 하였습니다. 결국 이 지역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되면서 06년도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 07년도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준우승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일본햄이 가끔 요미우리 경기가 없을 때 방문 경기를 도쿄에 있는 일본햄 팬들을 위해 도쿄 돔에서 갖는 정도가 되었죠. 실제로 일본햄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도쿄돔 경기 일정이 잡혀져 올라가있습니다.




2003년에 삿포로에 갔을 때 현지 분들에게 들은 얘기로, 홋카이도 사람들의 두 가지 큰 바람이 프로야구단 확보와 신칸센 직통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제 이뤄, 우승까지 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요.
(한솔로님 댓글 참조)


이 팀이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스타 선수는 무엇보다도 3000안타를 기록한 장훈 선수입니다. 백인천 선수와 같이 뛴 경험도 있는데, 타격 1위를 7회 달성을 하였습니다. ('61, '67∼'70, '72, '74년) 팀 내 통산타율(0.322)·통산 경기 출장 수(2,136)· 통산안타(2,435)· 통산홈런(414)· 통산타점(1,341) 등에서 역대 1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박성호의 일본 프로야구 참조) 물론 장훈 선수는 이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 멤버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기록도 하나 있는데 바로 경기 최다 실책 외야수 부분 3위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사진은 일본햄 전신 도에이 시절의 장훈입니다.


 


 


 


 


(사진 출처: 일본프로야구 공식 홈 페이지)


그리고 또 하나의 한국인 선수가 활약을 했는데 우리나라 야구 해외 수출상품 1호 백인천입니다. 지금도 모든 프로 야구팀에서 용병 포수는 포지션의 특성상 용병을 주전으로 활용하기는 힘들다는게 정설인데 언어와 문화 인종차별이란 장벽을 넘어 당당하게 성공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프로야구 원년 타격왕이시죠.

(데커드님 댓글 참조)




그리고 최근에는 2006년 시즌 후 FA로 옮기긴 했지만 오가사와라가 있었습니다.

사회인 야구 출신인데 내야수로 지명한 후 포수로 시작했다가

1루수-3루수로 옮기면서 대선수로 잘 성장시켰습니다.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시면 오가사와라 타격폼을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일본햄 시절의 모습의 사진도 있습니다.

http://www.inning.co.kr/bbs/zboard.php?id=board_kbo&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492




현재 오가사와라가 떠난 지금의 간판은 물론 다르비스 유 입니다.

(최형석님 댓글 참조)




일본햄 팀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재미난 기록이 있는데 바로 올스타전 최초 홈 스틸을 기록한 구단입니다. 그 선수는 다름 아닌 메이저에서 돌아와 입단한 신조 츠요시 선수인데 04년도 올스타전에서 나온 기록이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당시의 모습인데 포수인 한신의 야노 선수가 투수에게 공을 던진 순간을 노려서 들어왔다고 합니다. 신조 선수는 99년에 이어 04년 올스타 MVP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동영상도 첨부하였습니다.


 



(사진출처: 일본프로야구 공식 홈 페이지)


 





 


이 팀의 일본 시리즈 역사를 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점 한 가지를 꼽으라면 81년 일본 시리즈입니다. 당시 에나츠 유타카를 영입하여 리그 우승을 하였는데 상대는 같은 구장을 사용하는 (당시 고라쿠엔 구장) 요미우리 자이언츠였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더그아웃 시리즈였는데, 당시 2승 4패로 아쉽게 물러서야 했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당시 있었던 더그아웃 시리즈 2차전입니다. 자이언츠 감독으로 있는 하라가 6번 타자로 있는 것이 인상적이고 일본햄 투수의 시즌 성적이 15승 0패라는 것도 재미있는데 당시 ‘최고승률’로 올라갔습니다.


 





지바 롯데 마린스


창단연도: 1949


연고지: 지바


홈구장: 지바 마린스 스타디움, 30022명, 99.5m-122m-99.5m,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높은 외벽으로 둘러쳐져 있음.


팀 전적: (2008년 10월 6일 기준) 3817승 3714패 321무 .507


리그우승: 5회 (1950, 1960, 1970, 1974, 2005)


일본시리즈: 3회 (1950, 1974, 2005)


팀 변천사:

















毎日オリオンズ (마이니치 오리온즈) ( 1950~1957 )
毎日大映オリオンズ (마이니치 다이에이 오리온즈) ( 1958~1963 )
東京オリオンズ (도쿄 오리온즈)( 1964~1968 )
ロッテ・オリオンズ (롯데 오리온즈)( 1969~1991 )
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 (지바 롯데 마린즈)( 1992~ )









(우선 위의 동영상을 노래도 들어보시면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지만 한국 롯데 제품과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친숙해서 그런지 보면서 피식거리면서 웃었네요.)




이 팀은 1949년 당시 일본 유력 신문사인 마이니치 신문사에 의해 창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1969년 일본 롯데 기업이 인수를 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팀 명 마린스는 imbc 홈 페이지에 의하면 바닷가를 끼고 있는 도시를 연고지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해병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한국인이 운영을 하여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국계라고 알려지거나 한국인 선수들이 많이 뛰었던 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선수들 응원가를 들어보면 과거 코요테의 노래나 이정현의 '와'가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었죠.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NHK로 처음에 경기 응원가를 들으면서 속으로 '이것들이 이제는 응원가를 가지고 표절도 하나?'라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무식하니까 용감하게 저런 생각을 한 거죠.)






전에 말씀드렸지만 이 팀은 일본시리즈 초대 챔피언입니다. 신격호 회장님이 운영하는 기업인 롯데가 모기업이죠. 현재 차남인 한국 롯데그룹의 신동빈(일본명: 시게미쓰 아키오) 부회장이 구단주대행의 직책으로 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일본 롯데도 한국 롯데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돈 정말 안 쓰기로 유명한 팀이었습입니다. 성적이라도 좋으면 모르겠는데 성적도 보시다시피 그다지 시원한 팀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재미있게도 1950년에서부터 70년까지 리그 우승을 3번 했는데 각각 10년 주기로 한 것이 보입니다. 74년 일본 시리즈 우승을 하였는데 당시 주니치와의 일본 시리즈는 명승부 시리즈로 언급이 된다고 하네요. 물론 승수가 패수보다 많으니까 그나마 리그 3등 4등은 유지 하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만 87년부터는 거의 5등 6등을 도맡아 놓고 하는 구단이 되어버립니다. 그나마 투수력이 퍼시픽리그에서 괜찮은 팀이었는데 저 시기에는 팀 방어율이 4점대를 자주 기록하기도 하여서 숫자는 적지만 열광적인 팬들에게 그야말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스머프 유니폼, 챔피언 유니폼으로 알려진 롯데 오리온즈의 유니폼 디자인에 가네다 마사이치(김경홍) 감독이 아이디어를 낸것으로 알려지고있습니다.
어깨소매에서 부터 정강이 옆 까지의 굵은 선 말이죠. (헌터조지 님 댓글 참조.) 




안 되겠다 싶어서 데리고 온 감독이 95년 외국인 감독이었는데 바로 지금 지바 롯데 감독인 발렌타인 감독입니다. 당시 지바 롯데에 이 사람이 처음에 와서 놀랬던 것이 ‘훈련의 양이 너무 많다’라는 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줄이고 (지금 한국의 로이스터 감독하고 상당부분 비슷하죠.)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훈련을 했는데 이게 처음부터 구단주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여간 시즌은 시작을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팀의 성적은 95년 리그 2위(69승 58패 3무)라는 성적을 찍어줍니다. 이렇다면 당연히 뛰어나신 외국 과외 선생님을 잡기 위해 구단 측에서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프런트와 감독 사이에 불화가 생겨나는 바람에 1년 만에 감독이 낙마 한 것이죠.


 


다시 이 팀의 성적은 다시 5,6 잘 해야 4등을 찍어주는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래도 팬들의 수는 적지만 열정적이어서 계속 응원을 했습니다만 98년에는 15년 만에 리그 타이 기록인 15연패를 7월 4일 기록하였고 결국 18연패까지 간 후에야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팀의 매니져는 다시 한 번 발렌타인 감독에게 손을 뻗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거포 이승엽 선수도 지바 롯데로 흘러갔죠.


 


당시 기억에 남는 기사가 한 고참 선수의 인터뷰였는데 너무나도 자주 하위권에 머물다 보니까 인터뷰 내용이 “우리도 주목받고 싶다”였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한 팀당 따라다니는 전담기자가 있고 스타플레이어를 따라다니는 전담 기자가 따로 있습니다. 때문에 요미우리의 경우 이 팀이 움직일 때 마다 따라다니는 기자가 거의 수 십 명에 이릅니다. 스타플레이어를 쫓아다니는 기자는 선수를 따로 공부해야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바 롯데의 경우 팀 성적도 바닥이고 인기도 없는 팀이었기 때문에 많아야 7,8명이었죠. 게다가 한국에서 온 거포가 (자기들 눈에는 아직 보여 준 것 없는 신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기존에 있던 선수보다 더 관심을 모으니까 그게 아무래도 거슬릴 수 밖에 없겠죠.


 


아무튼 이 팀은 2004년 막판까지 포스트 시즌 경쟁을 하였지만 일본햄에 0.5게임차로 밀리면서 4위로 아쉽게 마감합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 05년도는 도대체 이 팀이 과거에 비실대던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변신을 하게 됩니다. 개막 2일째 되는 게임이었던 3월 27일 무려 26점을 쏟아내면서 구단 신기록을 만들어 냅니다. 저 숫자는 그래서 영구결번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롯데 홈 더그아웃을 보면 26번이 달린 유니폼이 걸려 있습니다. 올스타게임에서는 10명이 뽑히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이승엽 선수가 올스타전에서 상을 타기도 하였죠. 05년도의 마린스는 타선이 고정되는 날이 한 번도 없었는데 현지에서는 ‘보비 매직’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팀은 고정타순 없이 한신과의 일본시리즈에서 33점 (한신 5점)을 뽑아내는 맹폭격을 앞세워 일본 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당시 지바에 원정응원을 온 한신 팬들이 너무나도 어이없고 무기력한 타선에 분노한 나머지 지바 구장에서 행패 부렸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이 팀은 어느 정도 꾸준히 성적을 찍어주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올 해 발렌타인 감독과의 계약 기간이 끝이 나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는데 05년 1위, 06년 4위, 07년 2위, 08년 4위를 마크하였는데 과연 구단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


 


주요 선수는 저번 WBC때도 나왔지만 이제는 동양권 야구에서도 거의 없는 잠수함 투수인 와타나베 슌스케 선수입니다.

손 등이 지면에 닿을 듯 말 듯 하게 던지는 폼이 인상적이죠. 한 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투수입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장훈 선수가 바로 지바 롯데에서 3000안타를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요미우리에서 퇴단 후 80년, 81년 선수 말년에 잠시 뛰었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감상 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반부에 장훈 선수가 헬멧을 던지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당시 요미우리가 한국인이 대기록을 요미우리에서 작성하게 하기 싫다고 해서 내 보내려고 했는데

당시 동료인 왕정치가 제발 남겨달라고 사정을 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죠.


 




 




(사진출처: 일본프로야구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현재 주니치 감독으로 있는 오치아이 선수도 바로 롯데에서 활약을 했던 선수였습니다.

도어 스윙 (door swing) 타법으로 유명했던 선수입니다.

그리고 아주 개성이 강한 선수로 유명했는데 '오치아이 야구박물관'을 운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본 롯데에서 8시즌 동안 활약을 하였는데 82, 85, 86시즌 타격 3관왕을 (타율, 타점, 홈런)

3번 차지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니치 시절 한일 슈퍼게임에도 출전을 했던 선수이기도 합니다.

당시 타격폼이 한국에서도 없는 폼이어서 아이들이 야구 배트를 잡고 다 한 번씩 흉내내었던 선수이기도 하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치 검도에서 무사가 검을 잡고 있는 듯한 모습같습니다.)




그리고 댓글에도 달렸지만 무라타 죠지라는 선수 역시 유명한 투수입니다. 무려 23년간 (1968-1990) 선수생활을 롯데에서 하였는데 통산 215승 177패, 2,363탈삼진을 기록하였죠.

도끼투구법(마사카리)으로 유명한데 처음에 보았을 때 얼핏 최동원 선수가 그냥 저는 연상되기도 하였습니다. 무라타는 헌터조지님께서 어린시절 심야 mbc 해외 야구 하일라이트에서 처음 보았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시네요. 당시 해설자가 이 선수가 일요일 성적이 유난히 좋아서 "썬데이 죠지"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했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무라타 죠지 선수가 선수 은퇴 후 마스터스 리그 (OB선수들이 모여 뛰는 리그입니다.)

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인데 나이가 50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130이 넘는 공을 뿌려대는

장면입니다.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그만큼 몸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는 증거죠.









그리고 한국계 선수인 아리토 미치요가 있었는데

과거 롯데가 약했을 때 혼자 팀을 이끌다시피 한 선수입니다.

당시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이후 최고의 3루수라는 평가를 받은 선수입니다.

일본에서는 '미스터 롯데'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선수이죠.

(이 선수는 어떻게 제대로 된 동영상 하나가 없네요.)




아래 사진은 현재 롯데 마린스가 쓰고 있는 홈구장입니다.

외벽에 둘러싸인 야구장이 인상적입니다만 바로 옆에 바닷가가 있습니다.

때문에 바닷바람이 거세서 홈런을 많이 손해보는 구장 중 하나입니다.

이승엽 선수도 지바 시절 여기서 홈런 몇 개 까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출처는 구단 홈페이지. 외벽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출처는 구단 홈페이지. 바깥에서 본 구장의 모습.)


 


 




 

(이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발렌타인 신사입니다. 구단 홈페이지에서.)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창단연도: 2004년 10월 29일


연고지: 토호쿠 센다이 시(市)


홈구장: 크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구장 네이밍 마케팅 때문에 이름을 저렇게 해 놓았네요.)

1950년에 완공. 2005년 리모델링을 하여 사용 중.

구장의 모습은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inning.co.kr/bbs/zboard.php?id=board_kbo&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462



팀 전적: (2008년 시즌 종료 기준) 217승 333패 10무 .395


리그, 일본시리즈 우승: 없음


자본금: 4억 엔


종업원 수: 200명 (2007년 9월 현재)


팀 변천사: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토호쿠 라쿠텐 골든 이글스) (2005~ )



(역사가 짧기 때문에 조금 자질구레한 내용을 채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스와 긴테츠 버팔로스의 합병 이 후 나타난 구단입니다. 당시 오릭스와 긴테츠에서 버림받은 선수들을 모아 만들어 한 때 ‘쌍방울 레이더스’같은 느낌도 났지만 작년시즌 4위를 기록하면서 조금씩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올 시즌에는 한 때 A 클래스 진입도 노렸습니다만 뒷심이 부족한지 그만 5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 팀은 05년도에 다오 감독이 취임을 했는데 당시 성적이 38승 97패를 기록을 하였습니다. 때문에 100패를 기록 하느냐 안 하느냐로 말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97패에서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구단 첫 해 흑자를 기록하면서 성적은 비록 형편없지만 구단의 자생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게 평가받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퍼시픽리그의 관중 수는 센트럴리그의 4분의 3밖에 되지가 않아 리그의 자생력에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하였습니다. 퍼시픽리그 최고 구단인 세이부와 다이에(현 소프트뱅크)의 중계권료가 요미우리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면서 자칫 잘 못 되면 리그가 붕괴된다는 말도 나오기도 하였죠.




때문에 당시 구단을 통합하면서 10구단 1리그 체제로 만들자는 말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선수협회장이 후루타 선수였는데 여기저기 돌면서 양대 리그 제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여기저기 홍보를 하였던 장면이 눈에 선하네요.




그렇지만 취임한 지 1년 만에 감독은 노무라 감독으로 바꾸면서 상당한 비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신문에서 ‘인터넷 속도만큼 참을성이 정말 없다.’라는 비아냥거리는 기사를 한국의 스포츠 신문 기자가 번역해서 올려놓은 구절이 기억이 나네요.




아무튼 노무라 감독이 취임하고 난 후 이 팀의 06년도 성적은 다시 6위를 기록합니다.

하지만 07년부터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결국 4위로 올라서면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급부상하기 시작합니다.




이 팀의 모 기업은 ‘라쿠텐’이라는 인터넷 상거래 회사입니다.

얼마 전에 구단 모기업 소개하는 글에도 올렸습니다만,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회사입니다.

한 때 포르노 사이트도 운영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낭설이었나 봅니다.




아무튼 라쿠텐 트레블, 옥션 사이트 등등 상당히 많은 자회사 사이트도 존재하고 있는 구단이기 때문에

돈이 조금 풍족하지는 않지만 구단의 구색을 갖추거나 하는데 별 지장은 없어 보이는 듯 싶습니다.




상징물인 ‘골든 이글스’는 토호쿠 지방에 독수리가 많다는 점을 착안하여 만들었습니다.




주요 선수는 이와쿠마 히사시, 다나카 마사히로로 이어지는 원 투 펀치와 우리나라 SK에서도 활약을 한 페르난데스 선수 그리고 늦은 나이에 다시 회춘한 39세의 야마사키 다케시 선수입니다.




야마사키 선수는 주니치 시절 한국인 3총사와 주니치 시절 같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한 선수입니다.

07시즌 최다 홈런 (43) 최다 타점 (108)을 기록하였죠. 올 시즌 26홈런에 80타점을 기록하였습니다.




투수진은 무엇보다 이와쿠마 히사시 선수가 가장 눈에 보입니다. 이번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는데 오히려 한국 입장에서는 안 나온 것이 좋았다고 봐야겠죠. 04시즌 승률왕을 기록하였고 올 시즌 21승 4패 1.82를 찍어주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속구가 장기입니다만 몸이 호리호리하여 볼이 가볍다는 점이 단점인 투수입니다. 때문에 직구 구속이 좋기는 합니다만 변화구를 생각보다 많이 섞어서 던지는 편인 투수입니다. 09년 WBC에 제가 볼 때는 뽑힐 확률이 높은 선수라고 봅니다.




본래 구단 합병 때 합병된 구단에서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본인이 완강하게 거부해서 라쿠텐으로 넘어간 경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2중 투구 금지 조항으로 인해 투구폼을 교정하느라 05년도 9승 15패를 찍어버렸고 부상도 있어서 06년도는 1승 2패에 그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 보여준 저 성적만으로도 완벽하게 부활했다고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이와쿠마가 긴테츠 시절에 가지고 있는 투구폼과 현재 던지는 모습입니다.

현재는 2중 모션은 아니지만 발을 올려서 차는 폼을 놓고 보았을 때 완전히 2중 동작을 버리지는 못 한 듯싶습니다.






긴테츠 시절의 이와쿠마 2중 동작의 투구폼.







 




아래 동영상은 올 해 10삼진을 기록한 경기인데 MBC에서 중계를 하기도 한 경기입니다.







 


또 하나의 선수 다나키 선수는 작년 시즌 11승 7패 올 시즌 9승 7패를 기록하였는데 승운이 따르지 않아 시즌 내내 고생했다는 후문입니다. 구속은 150대 초반까지 찍어 줄 수 있는 투수인데 과거 세이부 시절의 마츠자카를 연상하시면 될 듯합니다. 슬라이더와 떨어지는 구종으로 타자를 상대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 일본 팀 분석에서 제가 올렸기 때문에 많이 적지는 않겠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13 탈삼진을 잡는 모습입니다.

슬라이더가 좋다고 댓글에 누가 달아놨네요.







이거는 라쿠텐 구단과 한국과 연관되어 있는 일에 대한 쿼터메인님의 댓글입니다.


조금 이른 이야기지만 한신과 요미우리가 아니라 이 팀이 요코하마와 더불어 한국 선수들의 스카우팅 망을 가장 크게 보고 있는 팀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의 삼성과 우여곡절 끝에 FA 계약을 했지만 임창용이 2년에 5억엔을 제의 받았었고, 올 해 이 팀의 한국파트 담당자인 송일수씨가 한국 선수들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선수로 손민한과 김동주를 거론하면서 립서비스형태의 이야기였지만 일본에서도 분명히 통한다라는 이야기를 건내며 선수들의 파악을 자세히하고 갔다라는 부분이 기사화 되기도 했습니다. KIA의 케인 데이비스 역시 이야기 되었었구요. 라쿠텐의 다나카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데, 이 팀에 올해 한국인 선수들이 몇 명이 보강될지 궁금합니다. 보강 파트로 크게 나오는 부분이 선발 투수 1명은 확실하게 이야기가 되나 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몇 자 적겠습니다.


올해 한신에서 이대호를 주목하고 보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락텐과 다른 팀이지만 한신에 대해서 적어보자면, 이전에 FA인 박명환에게도 한신은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박명환은 한신의 선발 투수로 거론하던 언론들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한신의 1~3선발이 아니라 5선발로 박명환을 봤었고, 5선발과 스윙맨을 겸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검토가 들어갔다라는 이야기가 되었던 기억도 납니다. 더불어 박명환이 과연 일본에서 선발이 아니라면, 마무리 앞에 있는 선수로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한신에서도 한국 선수들에 대한 영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과거 이종범이 일본에 있던 시절, 한신이 최종 도착지가 될 것이다라고 했었는데(주니치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로 간다 어떻게 한다하다가 KIA 입단하던 기억도 나네요.






이상으로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후기: 박성호 님이 필진으로 오신다고 들었는데

그 분이 오시면 일본야구가 어떤지 제대로 보여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글을 작성하면서 그런 필진이 한 분 정도 계셨으면 했는데

이닝 주인장님께서 가려운 부분을 바로 긁어주셨더군요.

아무튼 그 분을 제한적으로라도 이곳에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글을 쓰면서 일개 개인이 우리의 것도 아니고 남의 것 그것도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일본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해서 적는다는 것이 좀 무모하다고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나마 일본어라도 잘 알면 좋을 텐데 한자 몇 자 읽고 판단하고

그거를 우리나라 블로거들이나 개인 사이트 운영하시는 분들의 것과 확인해 가면서 쓸려니까

중간에 그만 둘 생각도 했는데 반 오기로 꾸역꾸역 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완벽하게 쓰고 싶은데 여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읽어주시고 격려를 주셔서 감사드리고

댓글로 부족한 부분 메꿀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부끄럽지만 이 글을 일본 야구에 대해 궁금하신 이닝 입주민 분들 

그리고 처음 일본야구를 접하시거나

이닝에 처음 가입 하셔서 오시는 분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by 동네잡변가 | 2008/12/08 15:05 | NPB | 트랙백 | 덧글(1)

FA 우선 협상 종료 ( 즉 1차종료) 결과


SK 김재현 : 7억 (계 2억 + 연 5억)

SK 이진영 : 결렬

롯데 손민한 : 15억 (계 8억 + 연 7억)

두산 홍성흔 : 결렬

두산 이혜천 : 일본행 (아직 결과 없음)

삼성 박진만 : 12억 (계 6억 + 연 6억)

한화 이영우 : 2억 1천

히어로즈 정성훈 : 결렬

LG 최원호 : 2억

LG 이종열 : 1억 7천

LG 최동수 : 2억 5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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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협상권이 끝났군요 ..

이제 FA 빅 2 궁민대갈 이진영 과 정성훈

준척 홍오바 홍성흔

이 3명의 결과가 궁금하군요

ㄲㄲㄲㄲ

이글루스 가든 - 한국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이글루人!

by 동네잡변가 | 2008/11/20 00:55 | KBO | 트랙백 | 덧글(1)

일본의 센트럴 리그에 대해서..

 

사진은 각 팀의 홈구장입니다.


메이지 진구 구장, 나고야 돔, 요코하마 스타디움
고시엔 구장, 히로시마 시민구장, 도쿄 돔
오사카 돔, 세이부 돔, 미야기 스타디움
후쿠오카 돔, 지바 마린스 스타디움, 삿포로 돔


(사진 순서대로 적었습니다.)


센트럴리그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쿄),
주니치 드래곤즈 (나고야),

한신 타이거즈 (효고현 니시노미야市-통칭 오사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요코하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도쿄),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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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센트럴 리그 에 대해 설명 하겠습니다 .

지금 센트럴 리그는 지금 한국 선수들이 뛰는 일본 리그로써 {이승엽 , 이병규 , 임창용 , (이혜천 야쿠르트와 계약임박)}

그리고 또한 우리나라에서 뛰었던 외국인들이 많이 간 리그로써 {타이론 우즈 , 세스그레이싱어 , 로베르트 페타지니 등}

우리에게 친숙한 리그 입니다. {SBS스포츠에서 요미우리 홈경기를 MBC ESPN 에선 요미우리 원정경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경기 스타일도 우리나라랑 다른게 지명타자가 없고 투수가 타석에 들어 습니다.

그래서 그 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창단연도: 1934년 12월 26일

연고지: 도쿄

홈구장: 도쿄 돔, 55000명, 100m-122m-100m (구장의 크기) Big Egg (홈구장 별명)

팀 전적: (2008년 10월 1일 기준) 5142승 3621패 267무 .587

리그 우승: 40회

단일리그 우승: 9회 (1936가을, 1937봄, 1938가을, 1939, 1940, 1941, 1942, 1943, 1949)

센트럴리그 우승 31회 (1951~1953, 1955~1959, 1961, 1963, 1965~1973, 1976, 1977,
1981, 1983, 1987, 1989, 1990, 1994, 1996, 2000, 2002, 2007)

일본시리즈 우승: 20회 (1951~1953, 1955, 1961, 1963, 1965~1973, 1981, 1989, 1994, 2000, 2002)


팀 변천사:

東京巨人軍 (도쿄교진군) (1936~1946) 
読売ジャイアンツ (요미우리 자이언츠) (1947~)



(팀 데이터는 naver giant2002님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입니다. 최근에는 팬의 숫자가 줄고 예전같이 인기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본 야구팬의 50%가 요미우리 팬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요미우리가 진 다음날의 지하철은 조용하다 못해 엄숙했고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팬들도 있었다고 하는 외국인의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홈구장으로 쓰이고 있는 도쿄돔은 일본에서 유일하고 공기로 천장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에어돔입니다. 공기로 천장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뜬공이 좀 더 타 구장에 비해 잘 날아가는 편입니다. 06년도에 우즈 선수가 이승엽 선수의 홈런 수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 이유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죠.



도쿄돔은 장외홈런은 없지만, 대형홈런이라는 의미에 부합하는 '인정홈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외야천장의 조명이나 현수막등에 공이 맞으면 홈런으로 인정해 주는것이죠.



도쿄돔은 일본 야구계에서 심장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바로 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인 명구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입장료는 400엔인데 우리의 장훈 선수도 헌액이 되어있습니다. 



요미우리는 과거 1965년에서 73년까지 9연패를 이룩한 것이 결정적인 인기몰이의 원인입니다. 일본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죠. 당시 감독이 지금은 고인이신 가와카미 데쓰하루 씨였는데 지금의 김성근 SK감독님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얼마나 승패에 대해 집착을 했던 사람이었는지 심지어 10점차 이상의 대승을 거둔 다음날에도 선수들을 모아놓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일일이 지적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게임을 하면 죽도록 펑고 시키고 타격연습을 시켰던 분이셨다고 합니다.


 


명문구단인 만큼 선수에 대한 욕심도 대단한 팀입니다. 요미우리 구단이 가지고 있는 선수 트레이드 및 스카우트 (특히 외국인 선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무조건 다른 구단보다 더 많이 주는 것, 2. 타 팀의 선수를 빼내어 그 팀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 (실제로 빼 내서 그 선수 많이 뛰지 않게 하고 벤치에 앉힌 후 은퇴시킨 선수도 꽤 있습니다.) 3. 팀 융화 및 존중보다 주로 기록이나 활약하는 모습만을 보고 뽑는다’ 입니다.


 


LG에서 뛰는 로베르토 페타지니 선수도 요미우리로 7억 엔을 (뒷돈 까지 합하면 10억 엔이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받고 갔으나 자기 포지션이 아닌 외야수로 뛰는 바람에 무릎이 고장 나는 아픔을 겪었죠. (당시 ‘기요하라’라는 대 스타와 포지션이 겹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외야로 나가야 했죠.)



요미우리는 역사상 딱 한 번 최하위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 1975년도입니다.



한국인 선수인 정민철, 정민태, 조성민 선수도 활약을 했었던 구단이기도 합니다만 12개 구단 중에서 외국인 선수가 활약하기 가장 힘든 구단이기도 합니다. 잘 하면 자리가 유지 되지만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2군으로 강등되어 올라오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구단의 프라이드가 너무 강해서 순혈주의가 가장 강한 구단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승엽 선수가 4번 타자로 자주 나왔던 06년의 경우 요미우리 OB진들이 ‘한국인에게 요미우리 4번을 맡기지 말아라’라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것 보면 하라 감독이 정말 부처님 수준의 마음씨를 갖기는 한 것이죠.) 현재 요미우리에서 뛰고 있는 다카하시 요시노부 선수가 요미우리 차기 감독 감으로 점 찍힌 상황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위키 백과에서 퍼 온 도쿄 돔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도쿄 돔이 아닌 구장이 하나 나오는데 이 구장은 과거 1987년까지 사용한 요미우리의 홈 구장으로 쓰였던 고라쿠엔 구장의 사진입니다.


 


(과거 요미우리가 사용했던 고라쿠엔 구장을 하늘에서 찍은 모습입니다.)


 


 


 


 


 


 


 


 


 


 


 


 


 




 



 


한신 타이거즈



창단연도: 1935년

연고지: 오사카 (자세히 하면 틀립니다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에서는 대부분 오사카 라고 하죠.)

홈구장: 한신 고시엔구장, 53000명, 96m-120m-96m (크기) 1924년 8월 완공

팀 전적: (2008년 10월 1일 기준) 4558승 4228패 268무 .519

리그 우승: 9회

단일리그 우승: 4회 (1937가을, 1938봄, 1944, 1947)

센트럴리그 우승 5회 (1962, 1964, 1985, 2003, 2005)

일본시리즈 우승: 1회 (1985)


팀 변천사:

大阪タイガース (오사카 타이거즈) (1936~1940.9.24)
阪神 (한신)                                   (1940.9.25~1946) 
大阪タイガース(오사카 타이거즈)  (1947~1960) 
阪神タイガース(한신 타이거즈)     (1961~ )

(팀 데이터는 naver giant2002님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요미우리가 간토(關東) 지방을 대표한다면 간사이(關西) 지방을 대표하는 지역 라이벌 팀입니다. 홈구장은 제가 얼마 전에도 작성한 고시엔구장입니다. 고시엔구장은 53000명이 들어 갈 수 있으나 구장이 워낙에 오래되어 현재 입장 인원을 50000명 선에서 제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매진이 되었어도 빈자리가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 때문입니다.



통칭 한신의 연고지를 오사카라고 일컫습니다만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연고지 조정으로 인해 아주 정확하게는 한신의 연고지는 오사카 외곽에 있는 곳입니다. 효고현 니시노미야市에 고시엔이 있습니다. 오릭스(긴테츠와 합병하면서 이 문제가 발생합니다)와 조정을 거친 결과지요.



일본에서는 요미우리 대 한신과의 경기를 교신센(巨神戰)이라고 따로 부를 정도로 관심이 대단합니다.
심지어 두 팀 간의 경기가 있는 날은 수도 사용량이 20%정도 줄어든다는 통계가 나왔을 정도입니다.



사실 한신과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그 때가 아마 06년도 일 겁니다. 요미우리 팀의 연습 상대로 만들어진 팀이 지금의 한신 타이거즈라고 일본 야구 전문 해설 위원이 이야기 하시더군요. 그 탓인지 오래된 골수 요미우리 팬들은 한신을 살짝 무시 하는듯한 인상이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할아버지들이요.)



한신 타이거즈의 암흑 시기는 90년대입니다. 90년부터 성적을 차례대로 나열을 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90~99년까지의 성적입니다. ‘6-6-2-4-4-6-6-5-6’ 마치 중국집 전화번호 같은 성적을 찍어주었죠.
그렇지만 관중 감소폭은 역대 프로야구 팀 중에서 최저 수준을 기록한 팀입니다.
그 아픔을 참아내었기에 지금의 빛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03년에는 18년 만에 1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당시 올스타에 7명을 포진 시키는 팬의 마음을 보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일본 프로야구는 내년 올스타게임부터 선수가 투표를 하는 제도를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팀으로 몰리는 것을 막아보겠다고 하는데 귀추가 주목됩니다. 하여간 한신 타이거즈는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와 비교 될 만큼 강한 팬들의 응집력과 극성을 보여주는 구단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사람들 중에서 오사카 사람들이 가장 한국 사람들의 성향과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내년의 한신의 행보는 어떨지 주목됩니다.



고시엔 구장에 대해선 따로 글 올리겠습니다.



주니치 드래곤스


창단년도: 1936년 1월 15일

연고지: 나고야

홈구장: 나고야 돔, 45000명, 100m-122m-100m 펜스 5m 지붕 60m
(외야 거리가 길고 펜스가 높아 일본에서는 후쿠오카 돔 다음으로 큰 구장으로 여김)

팀 전적: (2008년 10월 1일 기준)  4528승 4217패 297무 .518

리그 우승: 7회 (1954, 1974, 1982, 1988, 1999, 2004, 2006)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54, 2007)


팀 변천사:


名古屋軍 (나고야군)                                                    (1936~1943) 
産業(산업:이거는 일본어로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네요.)  (1944) 
中部日本 (주부니폰)                                                     (1946) 
中日ドラゴンズ (주니치 드래곤스)                                (1947~1950) 
名古屋ドラゴンズ (나고야 드래곤스)                             (1951~1953)
中日ドラゴンズ (주니치 드래곤스)                                (1954~ )



전통적으로 투수력이 좋은 팀입니다.


사와무라 상 (메이저리그의 사이 영 상 생각하시면 됩니다.)을 수상한 선수가 많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처지는 타력을 투수력으로 잘 메워 온 팀이기도 합니다.


99년에 선동렬, 이상훈 이종범 (부상을 당한 후 빛이 바랬습니다만)이 활약을 하였고 최근에는 이병규 선수가 활약을 하고 있는 팀이기도 합니다. 당시 99년 타격은 리그에서 ‘물 타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워낙에 투수력이 좋아서 1점 승부에 강해 승수를 많이 챙기기도 했습니다. 당시 오치아이-이와세-이상훈-선동렬로 이어지는 불펜진은 12개 구단 최강이라는 평가도 얻었습니다.


이 팀의 특징은 리그 2위를 많이 한 팀인데 무려 24번이나 기록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한창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잘 나갈 때 2위를 많이 한 탓에 (무려 요미우리가 1위를 기록 하였을 때 2등만 20회 가까이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구단이나 팬들의 분위기가 반 요미우리로 똘똘 뭉친 팀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일본에서 독하고 열광적인 팬으로 꼽히는 지역이 나고야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주니치의 나고야는 사연도 많고 한이 많은 도시입니다. 공교롭게도 도쿄와 오사카의 정 가운데 위치하면서 역사적으로 여기저기서 치이기도 많이 하고, 뭐랄까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한다면서 미움도 많이 받는 도시입니다. 그것이 야구쪽에서도 많이 적용이 되는데 나고야를 중심으로 그 인근의 절대적인 지지를 많이 받는 팀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상당히 미움을 받는 팀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때문에 지역적인 라이벌은 한신이지만 실력이나 외적인 분위기를 놓고 본다면 요미우리의 리그 라이벌은 주니치가 더 가깝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제로 주니치의 스프링 캠프 때 훈련양은 지옥 수준인데 요미우리를 이기기 위해 생겼다고 생각하셔도 제가 볼 때는 무방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얼마 전 입을 잘못 놀려서 화를 만든 호시노 감독이 바로 주니치 출신인데 초대 세이브 왕으로 등극한 선수출신입니다.
본래 요미우리가 지명직전까지 요미우리가 그를 1순위 지명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언론에 흘렸다가 다른 선수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지명을 받지 못하고 주니치로 자리 잡게 되자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안티 요미우리의 선봉장으로 변해버렸죠.
때문에 요미우리와 게임을 하게 되면 죽기 살기로 선수 시절에 던졌습니다.


호시노 감독은 한국계라는 풍문이 있기는 합니다만 본인은 강하게 아니라고 하고 있어서 그저 설로만 떠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감독이 되어서도 불같은 성격을 자랑하기 때문에 경기 도중 카메라가 호시노 감독의 얼굴을 자주 비춰주는 이유도 워낙에 얼굴 표정이 바로바로 나타나는 양반이 되어서 그게 꽤내 재미있고 인기를 얻는 이유가 되나 봅니다.


실제로 호시노 감독 대학 전공이 심리학이어서 속을 긁거나 도발하는 소리를 잘 하는 양반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마음에 드는 선수에게 자기 사비 털어서 차도 뽑아주기도 했다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97년에 나고야 돔이 개장을 했는데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당시 96년에 2위를 기록하였는데 97년에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은 구장의 사이즈가 현 나고야 돔보다 훨씬 작았던 구장을 써 왔던 탓에 적응이 안 되었던 것이죠.
이듬해 98년에 리그 2위로 올라서면서 구장에 적응을 했다는 증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난히 1등 복이 없던 구단인 탓에 (리그 1위만 일본 시리즈에 오르는 탓도 있을 겁니다.) 일본 시리즈 우승을 1954년에 하고 무려 54년 만에 (2007년) 일본 시리즈를 우승 경험을 갖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일화가 당시 99년 주니치가 연패에 빠졌을 때 불안한 호시노 감독이 한국 선수 3총사를 모아놓고 “너희들은 우승 많이 해 봤다면서? 나 좀 도와 달라”라고 한 일화도 있습니다.


굴곡 많은 이 팀의 일본 시리즈를 살펴보면 54년에 혈투 끝에 4승 3패로 이겨 우승을 했고, 74년 일본시리즈에서는 자이언츠를 승률 1리 차로 제치고 일본 시리즈에 나갔던 사건도 있습니다. 82년에는 자이언츠와의 게임차 0.5게임차로 제치고 일본 시리즈로 올라갔습니다. 88년에는 요미우리를 12게임차로 제치고 올랐고 99년에는 6게임차로 제치고 올랐지만 99년의 경우 시즌 초반에 10연승을 넘게 하는 바람에 그 성적으로 먹고 들어갔습니다.


04년에 리그우승으로 올라갔지만 당시 클라이맥스 시리즈 (한국의 플레이오프 제도 생각하시면 됩니다.)를 다 통과하고 올라온 세이부의 위세에 눌려 준우승을 하였고,
(나중에 쓰겠지만 세이부는 퍼시픽리그의 요미우리입니다. 실제로 선수들이 가고싶어하는 구단으로 꼽히기도 하죠.) 06년도에는 한신을 제쳤지만 일본햄 파이터즈에게 밀려 다시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당시 오치아이 감독이 “무슨 벽이 있는 것 같다”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죠.


그 한을 작년에야 풀었는데 제 생각에는 워낙에 오래간만에 올라가다 보니까 (요미우리가 우승을 많이 쓸어가기도 했죠.) 경험이 없어서 긴장하고 그래서 자기 실력이 안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은 나고야 돔입니다.
위키 백과사전하고 구글에서 가지고 왔는데 개인적으로는 특징이 없어서 그다지 끌려하는 구장은 아닙니다.


 



 


 


 


 


 


 


야쿠르트 스왈로즈


창단연도: 1950년 1월 25일

연고지: 도쿄

홈구장: 메이지 진구구장, 30830명, 91m-120m-91m 펜스 4.5m, 1926년 10월 완공,
도쿄 6대학야구리그가 개장 당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팀 전적: (2008년 10월 1일 기준) 3517승 4031패 256무 .466

리그우승: 6회 (1978, 1992, 1993, 1995, 1997, 2001)

일본시리즈 우승: 5회 (1978, 1993, 1995, 1997, 2001)


팀 변천사:


国鉄スワローズ (고쿠테츠 스왈로즈)                    (1950~1965.5.9)
サンケイスワローズ (산케이 스왈로즈)                 (1965.5.10~1965말)
サンケイアトムズ (산케이 아톰즈)                        (1966~1968) 
アトムズ (아톰즈)                                                (1969) 
ヤクルトアトムズ (야쿠르트 아톰즈)                     (1970~1973) 
ヤクルトスワローズ (야쿠르트 스왈로즈)               (1974~2005)
東京ヤクルトスワローズ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6~)


홈구장은 진구구장입니다. 고시엔구장만큼 상당히 오래 된 구장이죠.


긴 세월만큼 굴곡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구장이기도 합니다.
스탠드를 전쟁 군수물자에 동원해야 한다고 해서 뽑아 사용한 경력이 있는 구장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한동안 야간경기를 치루지 못 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구장이죠.


이 팀은 만년 하위 팀이었습니다.
스왈로즈는 이름은 40~50년대에 가장 빠른 기차의 이름이 츠바메(燕)라고 하는 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합니다.


과거 스타가 재미있게도 한국계 투수였던 400승의 가네다 마사이치 (金田 正一)였습니다.
워낙 자기 멋 대로인 투수여서 팀 내에서 별명이 가네다 덴노 (天皇)이었죠.
아래의 동영상은 가네다 마사이치 선수가 투구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입니다.
1분 20초부터 보시면 됩니다.







요미우리 전에 강해서 요미우리 킬러였는데 나중에 요미우리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장훈 선수와 친했는데, 가네다 선수가 장훈 선수에게 귀화할 것이라고 하자 장훈 선수가 나라를 배신했다고 하여 두 번 다시는 인사도 말도 안 붙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쿠르트의 팬이기도 한 이 팀은 주변에 나무가 많아 산책하는 사람이 항상 있는 구장입니다.


86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선수협을 반대했던 구단이었는데 선수협이 구성 되고 나서 미운털이 박혀서 그런 것인지 야쿠르트와 붙는 팀은 필사적으로 선수들이 싸운 모양입니다. 덕분에 리그 최하위를 기록해 ‘저주 받았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프로야구 선수협 파동이 있었을 때 우리나라 신문 기사에 제가 쓴 내용이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이 팀은 사실 별 볼일 없는 성적으로 일관하였는데 90년대에 들어와 전력이 강해진 구단입니다.


당시 ‘후루타’라는 걸출한 포수를 중심으로 한 노무라 감독의 ID야구 (Impputto Data)를 내세워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후루타 뿐만 아니라 나중에 다들 메이저에 입성하게 되는 이시이(전 다져스), 요시이(전 뉴욕 메츠), 그리고 메이져를 거처 현제 히어로즈에 몸담고 있는 다카쓰 신고와 무적의 배터리와 마무리를 가진 아주 좋은 팀이었습니다. 때문에 90년대 내내 일본 야구는 야쿠르트, 세이부가 우승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후루타 포수는 일본에서 상사로 모시고 싶은 인기인 베스트 10에 들기도 한 선수였습니다.


01년도 일본 시리즈에서는 당시 일본 프로야구에서 초강력 타선으로 유명한 긴테츠와 붙었는데 4승 1패로 야쿠르트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때 스포츠 신문에서는 후루타의 머리가 긴테츠의 이테마에 타선 (오사카 사투리로 ‘부셔버려’. 우리나라 사투리로 치면 ‘뽀사뿌라’ 정도 됩니다.)을 잠재웠다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아래는 위키 백과사전에서 가지고 온 진구구장의 사진인데 도쿄 신주쿠 메이지 진구라는 관광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습니다.



아래 메이지 진구구장 사진은 작년겨울에 리뉴얼한 이후의 사진입니다.
안전그물망을 경기관람하기 더 좋은 첨단으로 교체하고, 전광판도 풀 컬러 LED에 역대 최대 사이즈로 교체해서 경기 관람하기 굉장히 좋아졌다고 합니다. 
 




 


 


히로시마 토요 카프


창단연도: 1950년


연고지: 히로시마


홈구장: 히로시마 시민 구장, 91.4m-115.8m-91.4m, 32000명,
08년을 끝으로 철거예정. 1957년 7월 완공.


팀 전적: (08년 10월 2일 기준) 3583승 3927패 301무 .477


리그우승: 6회 (1975, 1979, 1980, 1984, 1986, 1991)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979, 1980, 1984)


팀 변천사:

広島カープ (히로시마 카프)                (1950~1967) 
広島東洋カープ (히로시마 토요 카프)  (1968~ ) 


시민 구단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구단입니다. 즉, 팀의 팬들이 일정 수준의 지분을 가지고 참여를 하는 구단이죠. ‘토요(東洋)’라는 글이 보이는데 이 회사는 공업회사입니다. MAZDA라는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항상 돈이 없는 구단이기 때문에 선수를 키워서 팔아 그 돈으로 구단을 운영하는 시스템을 가진 구단입니다.


히로시마의 경우 처음엔 순수한 시민구단으로 창단했다가, 1975년 첫 우승을 기점으로 그 이후 히로시마 지역의 기업들이 구단 운영비를 출자를 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출자를 해 주는 곳은 히로시마 현, 히로시마 시, 마츠다 자동차, 히로시마 어시장, 등이 있습니다.



구단이 설립한 카프 아카데미라는 야구 학교가 있는데 재밌게도 메이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알폰소 소리아노 선수가 이 카프 아카데미 출신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곳에서 키운 선수로 별 재미를 못 보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카프(carp)라는 이름은 잉어라는 뜻인데 히로시마를 관통하는 오타 강에 잉어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구단은 아시다시피 원폭투하를 당한 동네가 연고지인데 히로시마가 다시 재건되라는 의미에서 만든 구단입니다.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몇 가지 있는데 구단 창단 후 1967년까지 B클래스에 머문 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998년 이후 연속 B클래스에 머물고 있는 구단이죠.
올 해는 3위 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것으로 보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A클래스는 1위부터 3위까지 B클래스는 4위부터 6위까지를 말합니다.)
반대로 퍼시픽리그 세이부 라이온스는 20년 가까이 A클래스를 유지하여 신기록을 세운 구단입니다.


퍼펙트 경기도 몇 번 당해보았는데, 1956년 9월 12일 시합에서 당시 고쿠데츠(현 야쿠르트) 미야지 유우 선수에게, 1966년 5월 1일 다이요(현 요코하마)의 사사키 모치로 선수에게, 1994년 5월 18일 마키하라 히로미에게 당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복수를 한 경험이 있는데 1968년 9월 14일 소토코바 요시로 선수가 사사키 모치로 선수를 상대로 똑같이 되갚았습니다.
소토코바 선수는 일본에서 최다 노히트 노런 및 사와무라 수상의 경험이 있는 선수입니다.
(http://blog.naver.com/chemist93?Redirect=Log&logNo=70024606633님의 내용을 참조하여 재구성했습니다.)



지금은 만년 하위팀으로 굳어진 히로시마지만 70년대 말 재팬시리즈를 2연패하는 등 황금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장명부가 팀의 2선발까지 맡았기도 하였습니다.



한 가지 일본 시리즈와 관련하여 재미난 기록도 가지고 있는 구단인데 바로 사상 최초로 8차전까지 가 본 구단입니다.
상대는 퍼시픽리그의 세이부 라이온스였는데, 첫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으나 3연승 거두어 우승 하는 것 같았으나 내리 4연패를 당하는 바람에 그만 리그 우승에 만족해야 했던 경험도 있는 구단입니다.


구장이 상당히 작기 때문에 장타가 많이 나오고 전반적으로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주나 공격력이 부풀려졌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는 구단입니다.


80년대 이 팀이 잘 나갔을 때의 별명이 ‘아카헬’ 군단 (일본어로 아카는 붉은 이라는 뜻이고 헬은 헬멧의 약자입니다.) 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팀에서 제가 눈여겨보라고 하고 싶은 선수를 지목해 본다면 우선 지금은 은퇴하고 해설자로 활동 중인 기누가사 사치오 선수입니다.


이 선수는 혼혈 출신인데 2215시합 연속 출장을 기록하였고 678이닝 연속출장을 기록한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의 루 게릭 선수가 2131 시합을 기록하였는데, 그 기록을 1987년 6월 13일 히로시마 주니치전에서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골절 부상도 당해 실려 나갔는데, 다음날 대타로 나와 풀스윙을 보여주기도 한 철인이었습니다.
최태원 선수가 1014 시합 연속 출장의 대기록을 달성 했을 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준 선수이기도 합니다.



(출처는 NPB 공식 사이트. 은퇴 당시의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그 다음 동영상이 하나 나오는데 바로 아직까지 일본시리즈에서 명장면으로 뽑히는 ‘예술 21구’입니다.


이 명장면이 나오기 전 에나쓰에 앞서 던진 투수가 다름 아닌 고 장명부 선수였죠.


만루의 상황에 있는 투수는 ‘에나츠 유타카(江夏 豊)’라는 투수였는데 상대방의 스퀴스 사인을 간파하고 볼을 빼서 주자를 잡아내 일본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게 한 장면입니다.


에나츠라면 마사노리 모리타의 만화 '루키즈'에 나오는 불량아 출신의 투수입니다.
일본프로야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상당히 재밌게 볼 만한데, 주인공들의 이름은 실제 한신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선수들입니다.
(작가가 열혈 한신 팬입니다. 그리고 현재도 뛰고 있는 선수도 있습니다.) 


중간 중간에 일본 야구사에 획을 그은 선수들도 많이 나옵니다만 2분 24초부터 한 번 감상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뒤에 츠다 츠네미라는 마무리 투수도 나타납니다만 (3분 47초부터 감상하시면 됩니다.) 이 선수는 직구 하나로 승부를 했던 투수입니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는데 묘비에 '직구인생'이라는 문구를 새겨 줄 정도죠.
직구가 얼마나 힘이 좋았는지 당시 하라 감독이 선수시절 손목 골절까지 입었을 정도입니다.







(예술 21구 당시의 동영상.)




(출처는 NPB 공식 사이트. 21구째를 던졌던 모습의 에나츠 유타카.)



 


(히로시마 시민구장. 출처는 위키백과사전.)



 


(히로시마 카프 리그 우승 기념비. 출처는 위키백과사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창단연도: 1949년 11월 22일


연고지: 요코하마


홈구장: 요코하마 스타디움 94m-118m-94m 30000명


팀 전적: (08년 10월 4일 기준) 3396勝4159敗251分 .450


리그우승: 2회 (1960, 1998)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60, 1998)


팀 변천사:


大洋ホエールズ (다이요 웨일즈)                        (1950~1952) 
大洋松竹ロビンス(다이요 쇼지쿠 로빈스)           (1953~1954)
大洋ホエールズ (다이요 웨일즈)                        (1955~1977) 
横浜大洋ホエールズ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즈)    (1978~1992)
横浜ベイスターズ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1993~ )  



성적이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만 이 팀은 정말 하위권이 자기 자리라고 해도 뭐라고 할 말이 없는 팀이었습니다.


워낙에 바닥을 자주 기록한 팀인데 재밌는 기록이 하나 있다면 일본시리즈 원년 준우승 팀과 합병된 적이 있는 팀입니다.
(참고로 일본 시리즈 원년우승팀은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지바 롯데 마린스 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밌는 기록이 있는데 1959년 최하위를 기록을 했는데 1960년에 리그 1위를 기록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까지 달성한 유일한 구단이기도 합니다.


당시 팀 타율이 .230이었는데 방어율이 2.32였습니다. 
극심한 투고타저인 시절이기는 하지만 (참고로 당시 팀 타율 1위인 한신 타이거즈는 .242였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신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입니다.


당시 70승을 거두었는데 34승이 1점차 승부였습니다. 감독이 ‘미하라 오사무’라는 사람인데 바로 위장오더의 창시자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팀은 그러나 이듬해 바로 최하위로 떨어졌고 계속해서 하위권을 맴도는 팀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98년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일본 시리즈에서 세이부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대마신 사사키가 활약하던 시절입니다.
선동렬 선수와 마무리 투수 경쟁 관계였던 투수였죠.




이 당시 감독은 ‘곤도 히로시’라는 사람이었는데 바로 조성민 선수가 지금도 원수처럼 여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98년 올스타전에 조성민 선수가 나왔는데 투수 코치를 맡았던 곤도 감독에게 팔꿈치가 아프다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들은 척도 안하고 들어가는 바람에 계속 던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선수 생활에 치명타가 되는 부상을 입게 됩니다.


참고로 부산 사직 구장은 요코하마 구장의 것을 모델로 하여 만든 구장입니다.


현재 이 팀의 모기업은 TBS 방송국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지리적으로 요코하마는 도쿄와 25km떨어진 곳인데 한국의 서울과 인천도 25km떨어져 있습니다.








(요코하마 구장. 출처는 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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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의 글

여기까지 정리 해 봤는데요....

이 글을 정리하다보니 어느세 센트럴 리그는 이랬구나 라는걸 알수 있었구요

그리고 장훈 선수 관련 일화가 많으니 더욱더 장훈선수의 애국심을 알수 있는 계기가 되서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센트럴 리그와 같은 일본 리그면서 우리나라 야구 리그와 비슷한 룰인

퍼시픽 리그에 대해서 올리겠습니다.

글쓴이 - 장정환

편집주 - 양현성

by 동네잡변가 | 2008/11/17 13:27 | NPB | 트랙백 | 덧글(0)

일본 프로야구에서 판매되고 있는 구단 상품 (1)

이번에 제가 기획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판매되고 있는 구단 상품입니다.

이번 편은 히로시마와 야쿠르트 편입니다.

 
사진의 출처는 모두 각 구단 홈페이지입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편

  














이 것은 열쇠고리입니다.
한국에서 요새 '방크 (BANC)'라는 티가  있죠?
그러한 컨셉으로 만든 열쇠고리입니다.
저게 저래 보여도 800엔이나 합니다.


























 
이 것은 이번에 구단에서 새로 만든 신상품입니다.
보시면 일반 모자 같지만 야쿠르트 구단 로고에 빛이 나는 상품입니다.

 























이 것은 실제 프로선수들이 쓰는 글러브입니다.

구단 홈페이지를 가시면
인기있는 선수들의 포지션 및 실제로 어떤 글러브를 쓰는지 표가 있습니다.

팬들은 그 표를 보고 마음에 드는 글러브를 고르면 됩니다.

사진은 아오키 선수 (외야수)의 글러브입니다.

우리 돈으로 62만원합니다. 물론 주문제작이죠.























 

이 사진은 야쿠르트 스왈로즈 팀의 응원도구입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펴서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응원을 합니다.

내야에서 외야 쪽으로 보면 실재로 알록달록해서 이쁩니다.

 





히로시마 카프편

히로시마는 이번에 구장이 철거되고 09년에 새로운 구장이 생깁니다.

일본 최초의 비대칭 구장인데,

이게 참 우스운 것이.......

선수협에서 히로시마 구장에서 더 이상 못 뛰겠다고 보이콧 날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탄력을 받아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계속 나왔습니다.) 없는 돈 털어서 지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구장이 올 해로 마지막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기념품판매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상식 선에서 깨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니...... 오히려 한 수 배웠습니다.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상품은 실제 히로시마 구장에서 사용한 베이스입니다.

히로시마 감독이 마티 브라운 외국인 감독인데 친필사인을 해서 판매한다고 합니다.

가격은 무려 3만엔입니다. 그런데 다 팔렸습니다.



 















이 것은 히로시마 구장 모형입니다.

이제는 철거되기 때문에 모형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죠. 5000엔입니다.






























 

이 상품은 히로시마 구장 흙입니다. 이 것도 가격이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기념메달과 함께 크리스탈에 입혀서 판매합니다. 가격이 만엔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것은 크리스탈로 만든 구장의 모형도입니다. 5000엔입니다.



















 

제가 정말 기겁을 했던 것이......

히로시마 구장에서 마지막으로 벌어지는 게임의 입장권도 크리스탈에 입혀서 판매한다는 것입니다.

5000엔인데, 물론 표에 게임명이 적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표를 만들기 위한 종이까지 기념품화 시킨 것이죠.











































 

이 것은 히로시마 구단에서 만든 먹거리입니다.

카레, 과자, 오코노미야키(일본식 부침개), 생수, 심지어 카라멜까지.......

다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입히라고 파는 원피스 (투피스?) 입니다.

무슨 치어리더 복 같죠? 한 4000엔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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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글..

이렇게만 설명했는데도 말 다했네요 .. 특히 히로시마 같은경우는 진짜 혀를 내두를정도로

엄청난 상술에 진짜 경의를 표하고 싶군요 진짜

우리나라 구단이 이정도만의 마케팅만 해줘도 충분히 성공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롯데 팀은 충분히 하면 적자가 아니라 아마 첫 흑자를 낼수 있는 구단이 될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

다음에는 또 다른 구단 상품 내용을 갖고 글을 올리겠습니다.

  글쓴이 - 장정환 

편집자 - 양현성

by 동네잡변가 | 2008/11/17 13:03 | NPB | 트랙백 | 덧글(0)

아니오 감독님을 존중하지않겠습니다. (올림픽 이전에 쓴 글)

저는 이 결정은 정말 최악의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엔트리를 봐도 이렇게 뽑아야 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투수부분은 더욱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일단 투수 엔트리는 이거입니다.

*우완 투수 : 임태훈(두) 오승환(삼) 송승준(롯) 한기주(K)

*좌완 투수 : 김광현(S) 류현진(한) 권혁(삼) 봉중근(L) 장원삼(우)

*언더핸드 : 정대현(S)


여기서

이걸 보면서 의아한거가 몇개씩 보입니다 .

첫번째 윤석민의 미탑승

이건 제 알바에서 같이 일하시던 형님들도 의아에 했던 겁니다. (기아팬 2명 두산팬 1명)

윤석민은 솔직히 탑승했어야 합니다.

왜냐면 솔직히 선발 도 몇번 쉬면서 체력을 비축하고 있으면서

심지어 팜볼이라는 신종 무기와 이대진 뺨 떄려버리는 메커니즘과 제구력

이정도면 뽑혀야죠

근데 위에 좌완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무려 5명입니다. 그것도 선발용 으로 4명

김경문 감독님 생각에 뭐가 들었는지 꺼내 보고 싶지만

일단 선발을 중간으로 돌릴 선수는 두명입니다 .

즉 선발 선수를 부시겠다는 거지요...

또한 딴지를 걸자 하면

임태훈의 승선도 이해가 안됩니다 .

임태훈은 작년 루키 포스보다 한참 아래를 기고 있는 모습인데 왜 뽑은건지

김광현은 첫해 삽푸다가 2년차에 봉인해제지만

임태훈은 처음 베터리 쓰고 방전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즉 두산팬들한테 좀 거슬릴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군대 때문에 뽑은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재우선수가 뽑혔으면 인정하고 넘어갔습니다.

두번째 좌완 선발만 4명 ....

이건 정말 집고 가야 할 문제입니다.

국내 탑 수준 좌완 4명을 대려왔지만

일본하고만 싸울껍니까? 우완 한명 갔다 뭐하자는건지

송승준의 최근 3경기 기록과 지금 기록입니다.



윤석민의 최근 3경기 기록과 지금 기록입니다.



윤석민의 성적은 송승준의 성적보다 더 안정적이게 던져주었습니다.

이렇고도 윤석민을 안뽑은게 참 이상하고 임요환이 저그전상대로 메카닉하는 수준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해가 안되는 내야수 관련 에서 딴지를 걸어보겠습니다.


*내야수 : 정근우(S) 김동주(두) 고영민(두) 김민재(한) 박진만(삼) 이대호(롯) 이승엽(요미우리)

이게 내야수 엔트리입니다.

딱 봐도 참 이상합니다.

김민재와 고영민 AND 이승엽 이 3 명의 탑승은 이해 불가입니다.

첫번째 김별명은 어디로?

일명 김별명

한화의 4번타자이자 대포군단의 선봉장 클리어타선의 최종보스 김태균

그의 이름이 저 내야수 엔트리에 눈씻고 찾아볼수 없습니다.

일단 김태균의 7월 기록과 전체 기록입니다.

공격


수비


딱 봐도 갓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도 의아해 할것이다.

김경문 감독의 말로는 '이대호는 다른 포지션도 되고 확실한 4번타자가 있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했지만

국대에 4번타자 3명이상 뽑으면 흰머리가 더생깁니까? 아니면 발톱이 살에 파고듭니까?

그럼 비교 해봅시다.

일단 1st 상대자 롯데 이대호의 기록입니다.

공격

수비 (위가 3루수 아래가 1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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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2nd 상대자 두산 김동주의 기록입니다.

공격


수비


딱 기록을보니 차이가 훨 심하군요....

김태균이 훨신 압도합니다.

그리고 Sports 2.0 에 보면 한화 홈런쇼에 관련 기사를 보다보면

강타자들이 나란히 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난다합니다.

즉 저는 일단 김태균이 꼈었으면

3번 이대호 4번 김동주 5번 김태균

이런 생각이었는데 김태균이 빠졌다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두번째 이대호는 멀티플레이어?

김경문 감독님에 발언중 '이대호를 높게 평가한 것은 다른 포지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란 발언을

했는데 참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아는 롯데 팬중에 이대호 3루수비에 대해 기대하시는분들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수비도 좌우로 빠지면 잘 잡지도 못하고 정면만 잘 잡는다고 알앗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작년과 비교해보면 타율과 홈런도 떨어진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3루에 쓸 필요가 있냐는 겁니다.

3루는 핫코너로 강한타구들과 불규칙 타구가 오는 곳입니다.

김동주는 이대호와 같은 몸매를 지니고 있지만

그의 수비력은 거의 모든 야구팬들이 인정하는 수비력입니다.

하지만 이대호의 수비를 인정하는사람이 있을까요?

그니 저 멘트에 대한 의문점도 듭니다.

세번째 최정 & 박경수는 어디로?

최정 올해 스위치로 전향하고도 아직 쓸만하고 타격도 괜찮은 친구입니다.

박경수 올해 정말로 말도 안되게 포텐셜이 폭팔해서 엘지팬들의 기쁨을 주는 친구입니다.

하지만 이 둘의 공통점이라곤 찾을수 없지만 공통점이라면 둘다 올림픽 탈락이라는겁니다.

특히 심지어 박경수는 60인 엔트리부터 없었다는겁니다.

참 김경문 감독은 정말로 국가&실력보다 지역감정이 더 기울었던 결정이었던 같습니다.

고영민은 올해 특히 두산팬들에게 욕을 참 많이 먹고 있는 친구입니다.

김민재 이분은 올해도 역시 수비에 더욱 치중하시고 심지어 선발 출장도 줄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이 두 분의 공통점은 올림픽에 들었다는겁니다.

이걸 보면 참 어이 없어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껍니다.

일단 첫번째로는 박경수는 키스톤이 다 소화가능합니다.

두번째로는 최정은 타격이 요즘 적절하게 올랐습니다.

세번째로는 고영민은 요즘 점점 감이 죽어가고 있다는겁니다.

네번쨰로는 김민재는 요즘 점점 체력이 부쳐가시고 있다는 겁니다.

이쯤에서 기록을 살펴 보겠습니다.

고영민의 7월 기록과 전체 기록입니다.

공격


수비


경쟁자인 박경수의 7월 기록과 전체 기록입니다.

공격

수비 (위가 2루수 아래가 유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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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민재의 7월 기록과 전체 기록입니다.

공격


수비


플러스 해서 최정의 7월 기록과 전체 기록입니다.

공격


수비


이거 만 봐도

얼마나 이해가 되실지 모르시겠지만 의구심은 품으실겁니다.

저는 오직 이번 엔트리에 대해서 의구심 갖는 부분만 갖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쓴말을 한것은 오직 올림픽 야구에 대해 갖는 염원이 있었기에 썼습니다.

그 이상 그 이하의 마음은 없었습니다.


기록은 역시 Http://www.istat.co.kr 를 참조하였습니다.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그리고 견제구는 겸허히 받겠습니다.

by 동네잡변가 | 2008/11/16 21:06 | KBO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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