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08일
일본 퍼시픽리그에 대해서..
사진은 각 팀의 홈 구장의 모습입니다.
메이지 진구 구장, 나고야 돔, 요코아하 스타디움
고시엔 구장, 히로시마 시민 구장, 도쿄 돔
오사카 돔, 세이부 돔, 미야기 스타디움
후쿠오카 돔, 지바 마린스 스타디움, 삿포로 돔
(사진 순서대로 썼습니다.)
센트럴리그
요미우리 자이언츠 (도쿄), 주니치 드래곤즈 (나고야), 한신 타이거즈 (효고현 니시노미야市-통칭 오사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요코하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도쿄),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센트럴리그 편을 보시고 싶으시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www.inning.co.kr/bbs/zboard.php?id=board_kbo&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620
퍼시픽리그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사이타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홋카이도 삿포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후쿠오카), 오릭스 버팔로즈 (오사카),
지바 롯데 마린즈 (지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토호쿠 센다이)
(구단 명칭은 소닉님이 재 수정해 주셨습니다. 편의상 지명은 생략하고 진행하겠습니다. 소닉님께 감사드립니다.)
세이부 라이온즈
창단연도: 1949년 11월 26일
연고지: 사이타마
홈구장: 세이부 돔
팀 전적: (2008년 10월 4일 기준) 4019승 3525패 320무 .533
리그우승: 21회
(1954, 1956, 1957, 1958, 1963, 1982, 1983, 1985, 1986, 1987, 1988, 1990, 1991, 1992, 1993, 1994, 1997, 1998, 2002, 2004, 2008)
일본시리즈우승: 12회
(1956, 1957, 1958, 1982, 1983, 1986, 1987, 1988, 1990, 1991, 1992, 2004)
팀 변천사: 西鉄クリッパース (니시데츠 클리퍼스) ( 1950 ) 西鉄ライオンズ (니시데츠 라이온즈) ( 1951~1972 ) 太平洋クラブ・ライオンズ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 1973~1976 ) クラウンライター・ライオンズ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 1977~1978 ) 西武ライオンズ (세이부 라이온즈) ( 1979~2007 ) 埼玉西武ライオンズ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2008~ )
개인적으로는 이치로 시절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스 다음으로 좋아하는 구단 중 하나가 바로 이 팀입니다. 무엇보다 요미우리 중심의 야구계였던 80년대, 90년대에 대항하여 나타난 최고의 퍼시픽리그 명문 구단입니다. 특히 80년대 90년대 다수의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도 가고 싶어 하는 구단으로 발 돋음 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요미우리와 일본 시리즈를 꽤 자주 하였는데 요미우리 구단에게 가장 고춧가루를 많이 뿌린 구단이기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요미우리에게 많이 당한 구단이 퍼시픽리그의 두 구단이 있는데 지금의 오릭스 버팔로스와 소프트뱅크 호크스입니다.
팀 로고는 말 그대로 사자인데 일본의 국민 만화가 테즈카 오사무씨의 밀림의 대제 레오에서 가지고 와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소를 클릭하시면 이 팀의 로고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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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팀은 80년부터 2006년까지 A클래스(3부에 설명이 있습니다.)에 들어가 일본 프로야구 신기록을 만들기도 한 구단입니다. 작년 시즌에 5위로 마감해서 그제서야 B클라스에 들어갔죠. 우리에게는 삼성 유니폼과 (얼마 전에 제가 올린 글입니다만) 비슷해서 어느 정도 잘 알려진 구단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도 뛰었던 구단인데 바로 백인천 선수가 75년 타격왕이라는 기록을 남긴 구단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구단이기도 합니다.
현재 내이밍 마케팅을 발판으로 창단한 우리 히어로즈(현 히어로즈)가 창단할 때 내이밍 마케팅은 이전에 이미 실패한 마케팅 방법이다..라는 비판이 일어났었습니다. 그 때 예시로 제시됐던 팀이 바로 이 세이부 라이온스의 전신팀들 이였습니다. 원래 니시데쓰 라이온스 시절엔 교진과 양대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이였지만 니시데쓰가 운영난으로 팀을 매각하면서 새로운 모 기업이 스폰서획득을 목표로 내이밍 마케팅을 사용 하며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 -> 크라운 라이타 라이온스'로 이름을 변경하면서 운영한 경력이 있는 팀입니다. (백인천 선수가 리그 타격왕에 오르던 시절이 바로 이때죠) 하지만 내이밍 마케팅의 한계를 드러내며 세이부그룹으로 매각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데커드 님의 댓글 참조하였습니다.)
글쎄... 하여간 세이부 그룹이 많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나왔습니다만 최근에 어떠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여러 스타 선수가 있지만 두 선수만 한 번 꼽아보겠습니다. 한 때 대만 선수가 소속 되어 있었던 구단이기도 하였는데 80년대를 풍미했던 곽태원이라는 선수가 바로 이 팀 소속이었습니다. 91년 MVP 출신인데, 아래 동영상은 87년 일본 시리즈에서 활약한 곽태원 투수의 동영상입니다. 5분 정도 되는데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일본에서 활약하는 대만 투수가 한 때 3명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곽태원의 일본명이 카쿠타이겐, 곽원치가 카쿠겐지, 이름이 비슷해서 상당히 일본사람들도 햇갈리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신의 카쿠리까지 해서 three-kaku로 불렸다고 하네요. (최형석 님의 댓글과 네이버 지식 검색의 내용을 참조하여 재구성 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동영상은 주니치 소속의 곽원치 선수의 것인데 끝내기 홈런을 기록한 장면입니다.
한 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시 91년 한일 슈퍼게임에 등장하기도 하였죠.
(최형석 님의 댓글 참조 후 재구성 하였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였지만 아키야마 고지 선수가 이 팀 선수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홈런 세레모니가 아주 독특했던 선수입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초반부터 시선을 끄는 행동을 보여줍니다.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선수는 400홈런 300도루를 기록한 선수인데 유일하게 이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바로 장훈 선수 (504홈런 311도루)입니다. 그리고 85년부터 2002년까지 올스타전 연속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기도 한데, 역대 3번째로 가장 많은 올스타전 출장 기록을 세운 선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 야구 최초로 40-40클럽을 만들 수 있기도 하였지만, 43홈런 38도루에 만족을 해야 했기도 했었던 선수입니다. (박성호의 일본프로야구 사이트에서 기록을 참조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이부 최고의 영웅 중 한명으로 기요하라 가즈히로를 꼽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고 얼마 전 이치로까지 참여하여 정말 화려한 은퇴식을 치루었죠.) 86년부터 96년까지 (맞나 모르겠습니다..) 11시즌 세이부의 황금기를 같이 한 4번타자였죠. 거인에 뽑히고싶어서 드레프트장에서 거인에게 픽을 받지 못하자 울음을 보이고 거인과의 제팬 시리즈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한 순정파 남자였습니다. 당시 요미우리로 이적 후 당시 K-K콤비였던 구와타와 정말 어색했었는데 구와타가 먼저 다가가 사과하고 챙겨주어서 과거와 거의 가까운 관계를 다시 만들었다고 하는 스포츠 2.0의 인터뷰 내용도 떠오릅니다. 무관의황제 그리고 한국계가 아닌가해서 더욱 한국에서 유명해진 일본 고시엔 최고의 천재중에 한명인 기요하라가 세이부에서 활약하던 그 모습 잊기 힘들다고 봅니다. 거인에서 자주 서러움을 당했던 그였기에 더 드라마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는옥후다님의 댓글 참조후 재구성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타난 현재 보스턴에서 뛰고 있는 마츠자카가 스타이고 현재는 나카무라 히로유키 (유격수) GG 사토 (외야수) 와쿠이 히데아키 (투수)로 이어지는 스타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래는 마츠자카가 고시엔에서 홈런을 친 동영상인데 투수가 우리에게 낯이 익죠?
(참고로 지지는 일본어로 아저씨를 뜻하죠. 사토 라는 성이 일본에서 가장 흔한 성이라 뭔가 특별해 보이고 싶었던 지지 사토는 자신의 별명인 아저씨(노안이라 그렇다네요)를 붙여서 선수 등록명으로 사용했답니다. - butterb 님의 댓글 참조)
아무튼 이 팀은 80년대 그리고 90년대 황금기를 맞이하였고 그 후에도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올린 구단이기도 합니다. 04년에는 퍼시픽리그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리의 플레이오프 제도)를 다 통과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해 명문 구단으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과거 모리 감독 시절이던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 세이부 왕조를 구축하였는데 90년대 초반 타선에서는 아키야마-기요하라-데스트라데, 이른바 AKD타선이 이끌었고, 투수는 두명의 와타나베와 이시이, 쿠도, 곽태원, 완벽한 5인로테이션이 돌았으며 포수 이토 선수까지 나와 세이부의 황금시대를 도저히 무너뜨릴 팀이 없었습니다. (붉은사막, 최형석 님의 댓글 재구성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06년도 구단이 발표한 돈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감사 결과가 나오는 바람에 (이게 세이부 선수단에서 감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매년 이렇게 돈을 어디다 썼는지 감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다음해 의욕을 상실했는지 리그 5위로 마감을 하게 됩니다.
세이부 구단의 홈구장인 세이부 돔은 전에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본래 뚜껑이 없는 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돔 열풍이 불어서 뚜껑을 만든 구장인데, 이게 오히려 중간만도 못 한 구장으로 변신한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관중 감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구장 관련 글은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나타납니다.
아래 사진은 세이부 황금시절이었던 80,90년대 우승 기념 사진입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창단연도: 1938년 2월 22일
연고지: 후쿠오카
홈구장: 후쿠오카 돔, 100m-120m-100m, 48000명, 지붕 개폐식 돔
팀 전적: (2008년 10월 4일 기준) 4454승 4118패 315무 .520
리그우승: 13회
(1946, 1948, 1951, 1952, 1953, 1955, 1959, 1961, 1964, 1965, 1966, 1973, 1999, 2000, 2003)
일본시리즈우승: 4회 (1959, 1964, 1999, 2003)
팀 변천사: 南海 (난카이) (1938가을~1944.5.31) 近畿日本 (긴키 니폰) (1944.6.1~1944말) 近畿グレートリング (긴키 그레이트링) (1946~1947.5.31) 南海ホークス (난카이 호크스) (1947.6.1~1988) 福岡ダイエーホークス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89~2004) 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5~ )
홈런왕 왕정치가 (일본명: 오 사다하루) 감독으로 있는 팀입니다. 특이하게 선수들보다 감독이 더 인기가 있는 구단인데 감독이 선수시절 대스타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해 왕정치 감독은 은퇴를 선언했는데 암 수술 후 급격하게 몸이 쇠약해진데다 건강이 악화된 모양입니다. 그리고 팀 성적이 계속 상위권을 유지하다 올 해 5위를 기록하면서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95년부터 팀을 맡아왔으니 장수하신 감독님이시죠.
과거 소프트뱅크 전신 오사카 난카이(南海) 시절에는 리그 우승을 많이 해서 상당한 명문구단이었는데 (리그 우승 횟수로 따지면 세이부, 소프트뱅크, 오릭스가 서로서로 많이 나누어 가진 편입니다.) 그만 일본 시리즈 상대가 가장 강력했던 시절의 요미우리와 많이 붙는 바람에 정작 일본시리즈에서는 별 재미를 못 보던 구단이었습니다. 65년부터 74년까지 당시 준우승만 3회를 했죠. (오릭스의 전신이었던 한큐 브레이브스는 일본시리즈 준우승만 5회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 동안 침체기에 빠져있었는데 1989년 ‘다이에’라는 대형 유통업계가 구단을 인수하면서 오사카에서 후쿠오카로 연고지이전을 하게 됩니다. 현재도 오사카에 가면 과거 난카이 호크스 시절을 잊지 못해 소프트뱅크 호크를 응원하시는 팬들이 꽤 많습니다. 그만큼 과거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죠.
훗 날 소프트뱅크가 구단을 인수 했는데 아시다시피 구단주는 한국계의 ‘손정의’입니다. 일본 방송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프트뱅크 휴대전화 광고가 굉장히 자주 나오죠.
1999년 당시 한국인 3총사가 활약을 한 주니치와 일본 시리즈를 붙었는데 당시 도쿄 연고지가 아닌 팀 끼리 붙은 것이 1979년 이후 20년 만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00년에 일본 시리즈에서 요미우리와 상대를 하였는데, 당시 ‘나가시마의 요미우리 대 왕정치의 다이에’라는 기사를 내 세워 흥행몰이를 하였습니다. 시리즈는 당시 4승 2패로 요미우리가 가져갔습니다.
묘하게도 04년도 클라이맥스 시리즈라는 플레이오프 제도가 생긴 이 후 좋은 성적을 올리고도 일본 시리즈에 오르지 못 하는 비운의 팀으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다이에 시절 강력했던 타선을 자랑하는 모습입니다.
희한하게 둘 다 상대가 오릭스였는데 당시 용병 중 하나는 작년에 LG에서 뛰었던 발데스가 이 팀 소속이었죠.
소개 해 드리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현재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감독으로 활약 중인 ‘노무라 가츠야’씨가 이 팀 소속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감독 부임 후 입으로 상대방을 긁는 소리를 잘 한다고 하여 고게키(口擊)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죠. 전 부인이 아주 골 때리는 짓도 잘 했는데, 난카이 시절 선수들을 불러놓고 하인처럼 부렸다고 해서 오사카의 여제 (大坂의 女帝)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홈구장은 1993년 완공된 후쿠오카 돔입니다.
디자인은 고대 로마의 격투 경기장을 모티브로 하여 지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가 본 경험이 있는 야구장이기도 합니다만, 이 야구장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지붕이 20분 동안 전체 면적의 60%가 열립니다.
그리고 지진과 강풍이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중간에 지붕이 열리다 멈추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붕을 열지 않는데, 이유는 지붕을 한 번 열고 닫는데 우리 돈으로 전기세 및 이런 저런 돈이 약 130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이거는 제가 어디서 보거나 들은 내용인데 출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때문에 구단입장에서는 별 다른 이득이 나지 않아 더 이상 지붕을 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장 안의 시설은 그 옆에 커다란 건물이 있는데 호텔입니다. 그리고 사우나, 헬스클럽도 설비가 되어있고 아이들이 뛸 수 있도록 풋살(FUTSAL) 경기장도 설비가 되어있습니다. (실제로 화이트보드에다 몇 시까지 사용한다고 아이들이 꼬불꼬불한 글씨로 깨알같이 적는 것을 사용 후 지우기도 보기도 하였습니다.) 전문 야구 매장도 있는데 우리나라 동대문 정도의 수준으로 잘 갖추어 놓고 판매를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전문 매장에 들어가서 저도 구경 꽤 오랫동안 한 기억이 납니다.)
아래 사진은 홈구장의 모습인데, 이번에 조사하면서 몇 가지 특이한 것들이 보여서 한 번 올려보게 되었습니다. 설명과 함께 같이 가보겠습니다.
(사진 출처는 구단 홈페이지입니다.)
(돔 지붕이 열린 모습입니다. 만약 배를 타고 후쿠오카로 들어가시게 된다면 멀리서 돔 구장을 보실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상당히 웅장하죠.)
(돔 구장 내부의 모습인데 불이 들어와 있는 곳이 4층에서 6층까지입니다.)
(4층에서 6층의 내부입니다. 이 방은 팀 내 인기 선수의 물품으로 꾸민 테마 방인데 사이토 가즈미, 마츠나카 노부히코, 가와사키 무네노리 선수의 방입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가와사키 선수는 팀 내에서 인기가 상당히 좋습니다. 왜? 잘 생긴 총각이니까요.)
(이것은 4증에 있는 라운지와 라운지 뒤의 음식 매장 그리고 아이들 놀이터입니다. 라운지는 세계 최장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것은 비즈니스 용 접대실입니다. 8인, 12인, 16인실이 있다고 하네요.)
오릭스 버팔로즈
(이 팀은 과거 오릭스 블루웨이브스와 킨테츠 버팔로즈가 합병되어 나타난 구단입니다. 때문에 두 구단의 역사를 적겠습니다. 다소 길기 때문에 재미 없을 수 있고 지루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박물관에 가서 천천히 둘러본다는 기분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스
창단연도: 1936년
연고지: 고베
홈구장: 고베 스카이마크 스타디움 (과거 고베 그린 스타디움) 35000명 99.1m-122m,99.1m
팀 전적: (구단 통합 때문에 각 팀 별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단 공식 홈페이지에는 08년도 시즌 종료 기준 4549승 4192패 314무 .520이라고 나온 것으로 보아 오릭스 시절의 것만 합해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리그우승: 11회 (1967, 1968, 1969, 1971, 1972, 1975, 1976, 1977, 1978, 1984, 1995, 1996)
일본시리즈: 4회 (1976, 1977, 1978, 1996)
팀 변천사: 阪急 (한큐) (1936~1946) 阪急ブレーブス (한큐 브레이브스) (1947~1988) オリックス・ブレーブス (오릭스 브레이브스) (1989~1990) オリックス・ブルーウェーブ (오릭스 블루웨이브스) (1991~2004) オリックス・バファローズ (오릭스 버팔로즈) (2005~ )
이치로와 구대성, 그리고 브룸바 선수가 한 때 활동을 하였던 구단으로 유명합니다.
현재‘오릭스 버팔로즈’라는 이름으로 구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오릭스 블루웨이브스 시절의 이야기만 다루겠습니다.)
(구대성 선수 승리투수 후 인터뷰 장면.)
(DC 야갤에서)
이 구단은 과거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이 최고의 황금기였습니다. 당시 1967년부터 1975년까지 리그 우승을 밥 먹듯이 하였는데 불운하게도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일본 시리즈 9연패를 달성을 하는 때에 당시 난카이 호크스 (현 소프트뱅크 호크스) 와 더불어 가장 불운한 팀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습니다. (한큐 5회 난카이 3회 일본시리즈 준우승했습니다.) 그 후 84년에도 우승을 차지했으나 당시 히로시마에게 밀려 또 일본 시리즈 준우승에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참고로 한신도 법적으로야 오사카연고이긴 하지만 회사의 의미 자체가 오사카와 고베를 연결하는 철도의 이름이기 때문에 고베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한신의 '한'은 오사카(大阪)의 阪, 신은 고베(神戶)의 神을 딴 것이고, 무엇보다도 홈구장인 고시엔구장의 소재지가 오사카가 아니라 고베가 속해있는 효고현에 있습니다. 사실 고베라는 도시가 하나의 프로팀이 거주할만큼 큰 도시가 아니라서 오릭스는 자생력에서 조금 문제가 있는 팀이었습니다. 구대성 선수가 처음 오릭스에 갔을때 너무 한적한 도시라서 한숨을 쉬었다죠. 오릭스의 전신팀도 원래 철도회사인 한큐(阪急 : 오사카급행?)라서 한신과 긴데쓰를 피한다고 간게 바로 옆에 있는 도시로 간 것이지 팀의 정서는 오사카를 비롯한 관서지방이라고 합니다. (최형석 님의 댓글 참조했습니다.)
이 팀에서 꼽을 만한 선수 2명을 꼽아보자면 다들 잘 아시겠지만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리드오프로 활약 중인 스즈키 이치로 선수입니다.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인데 (얼굴도 잘 생겼다고 해서 6툴 플레이어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이 선수는 94년 혜성같이 등장해서 한 시즌 최다 안타 (210개)를 기록하였습니다. 당연히 리그 MVP에 리그 최고 타율 신기록인 .385를 기록하였죠. 팀이 한큐에서 오릭스로 바뀌면서 리그를 대표할 만한 스타가 없어 고민 중이었는데 이치로는 그런 고민을 말끔하게 벗어 던져 준 스타가 된 것이죠.
사실 이치로도 처음부터 이름이 이치로는 아니었습니다. 이치로가 93년 주니어올스타전에서 MVP를 차지 할 때 이름은 분명히 스즈키였습니다. 94년부터 등록명에 본명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면서 두 명의 선수가 개명을 했는데 그중에 한명이 이치로, 그리고 또 한 명이 판치라는 선수였습니다. 이치로도 한글로 쓰면 그냥 이치로지만 사실 일본어로는 외래어를 쓸때 사용하는 가타카나 イチロ- 라고 쓰기 때문에 뉘앙스가 많이 다릅니다. 스즈키도 흔한 성이지만 이치로도 우리나라 철수만큼 많은 이름이라 우리식으로 하면 김철수가 CHUL-SU 라고 등록한거나 마찬가지인거죠. 혹시라도 이치로(一郞)라는 이름의 일본인을 만난다면 무조건 집에서 큰아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뒤에 지로(二郞)라고 끝나는 이름은 둘째, 사부로(三郞)라면 셋째라고 보시면 됩니다. (최형석님의 댓글 참조)
기억하실련지 모르겠지만 90년대 중반에 고베 대지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구장에 가면 간바레 고베!! (힘내라 고베!!)라는 말이 적혀있었는데 이치로라는 선수와 함께 맞물려서 대히트를 기록하였죠. 그 것에 힘입어 95년 리그 우승, 96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하게 됩니다.
이치로 선수가 만든 몇 가지 일이 있는데 한 가지는 바로 성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등록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스즈키는 성입니다. 그런데 너무 흔해서 이름으로 등록하라고 당시 감독이었던 오기 아키라 씨가 (지금은 고인이지만) 시켜서 ‘이치로’라고 등록을 하게 되었죠.
당시 주변에서 썩 좋게 보지 않았는데 아시다시피 워낙에 잘 하니까 그것이 오히려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의 이치로가 만든 신드롬은 바로 외야석 매진입니다. 이치로는 아시다시피 우익수가 자기 포지션인데, 이치로 선수가 뛰는 것을 보기 위해 외야석부터
매진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죠. 오릭스 팀이 원정을 가더라도 이 현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상 최고의 연봉 인상폭을 기록한 선수인데, 당시 800만 엔이었는데, 94년 대기록을 작성 한 후 8000만 엔까지 치솟았던 것이죠. 1000%라는 인상폭을 기록하였습니다. 아마 당시 본인도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감이 오지 않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이치로 선수가 활약을 하였던 동영상인데, 그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되는 것 위주로 올립니다.
본래 이치로는 아마시절 투수출신입니다. 그래서 어깨가 상당히 강견이죠.
하지만 아래 동영상을 보시면 왜 이치로에 팬들이 미치는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심지어 야구 잘 모르는 저희 어머니도 이치로 이야기 하실 정도면...)
또 하나 소개해 드리고 싶은 선수는 바로 사상 최초로 시즌 106도루를 기록한 후쿠모토 유타카 선수입니다.
당시 한큐 브레이브스 시절에 달성한 기록인데 거의 나갔다 하면 뛰는 선수였습니다.
88년 은퇴 당시 1065도루를 달성하였습니다.
키가 170이 되지 않은 작달만한 선수인데 도루센스가 타고난 모양입니다.
메이저리그 한 시즌 개인 최다 도루가 104개라고 하는데 그것을 넘겼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자기 발을 1억 엔 보험을 들어놓아 화제가 된 선수이기도 합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이 선수의 은퇴 시합입니다. 당시 대 투수였던 잠수함 투수 야마다 히사시 선수와 같이 은퇴시합을 하였네요.

(선수 시절의 모습. NPB에서)
홈구장인 고베 구장의 특징이 있다면 바로 장내 아나운서인데 남자가 DJ입니다.
다소 느끼한 목소리로 선수들을 소개하는데 2000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장이 재래식 구장이 되어서 가끔 스피드 건이 오작동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하네요.
아래 사진은 고베 구장의 모습입니다.
(출처는 구단 홈 페이지)
참고로 현재 오릭스 버팔로즈는 고베와 오사카 공동연고지역팀입니다. 오릭스가 옛 블루웨이브시절 홈구장인 스카이마크 스타디움(옛 그린스타디움)과 쿄세라돔(옛 오사카돔)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빽볼님 댓글 참조) 현재 공식적으로는 오사카가 연고인 구단이고 서브 연고로 고배를 사용 중 입니다. 그래서 현재 이팀도 고배지역에서는 배신자, 옛 오사카 연고팀 긴테츠 펜들로는 점령군으로 양쪽에서 부터의 비난에 빠진 모습도 있습니다. (데커드 님 댓글 참조)
긴테츠 버팔로즈
창단연도: 1949년 (데커드 님 댓글 참조)
연고지: 오사카
홈구장: 오사카 돔 (현 쿄세라 돔)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면 구장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팀 전적: 구단 통합으로 인해 현재 찾을 수가 없네요.
리그 우승: 4회 (1979, 1980, 1989, 2001)
일본 시리즈 우승: 없음
센트럴리그에서 요코하마가 만년 하위 팀 이었다면 퍼시픽리그에서는 긴테츠 버팔로즈가 만년 하위 팀이었습니다. 오릭스의 전신 한큐도 본래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하기 전 까지만 하여도 만년 하위 팀이었는데 (그 이후 한큐는 리그 우승을 밥 먹듯이 한 때 하였죠.) 긴테츠의 경우 정말 리그 유지를 위해 하는 수 없이 있는 ‘짐짝구단’이었습니다. 본래 사철(私鐵 일본어로 시테츠) 기업이기 때문에 돈이 적거나 구단 운영이 힘든 구단은 아니었는데 좀처럼 하위권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리그 우승을 해서 올라가면 가장 극적인 장면에 나오는 불운한 주인공 역할은 두 번이나 하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79년 일본 시리즈에서 나온 (히로시마 편에서도 소개 드렸습니다만) 에나츠의 예술 21구 사건이고
하나는 89년에 일어난 가토 투수의 자이언츠 팀에 대한 도발이었습니다.
굳이 해피엔딩을 찾자면 2001년에 나온 리그 우승 결정 역전 만루 홈런인데 그나마 이게 속한다고 해야 할까요?
79년 에나츠 투수의 예술 21구
당시 오사카에서 벌어진 히로시마 카프와 긴테츠 버팔로즈의 최종 7차전이었습니다. 당시 4-3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주자가 나가고 base on balls와 에러까지 합해 무사 만루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때 올라간 투수가 히로시마의 에나츠 유타카 선수였는데 긴테츠는 최악의 경우 1점을 따 내거나 역전해서 일본 시리즈 우승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찬스에서 당시 투수인 에나츠 선수가 스퀴즈를 간파해 버린 것이죠. 그래서 공을 일부로 하나 빼버렸는데 타자가 김재박 감독처럼 개구리 번트 시늉까지 하였지만 실패하여 삼진 아웃을 당했고 스퀴즈 사인이 나와 뛰어 들어갔던 3루 주자는 그만 횡사하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2아웃 상황, 이 쯤 되면 명문 팀이면 안타를 쳐 내었다거나 끈질기게 버티어 투수를 괴롭혔겠지만 긴테츠는 그럴 만한 팀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2아웃이라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다음 타자가 삼진을 당해 시리즈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습니다.
2분 24초부터 보시면 됩니다. 몇 장면 안 되지만......
89년 가토 투수의 지나친 도발
당시 89년 긴테츠는 2위 오릭스 브레이브스와 승률 1리 차이의 혈투 끝에 간신히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센트럴리그의 우승팀은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는데 9게임차로 여유 있게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느긋하게 일본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었죠. 간신히 따돌리고 올라온 팀과 느긋하게 준비하고 올라온 팀과의 대결은 사실 불 보듯 한 것이었습니다. 이거는 바보가 아니면 요미우리가 우승 그냥 가지고 가겠구나 하는 시리즈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어라? 이게 웬걸? 긴테츠가 당시 홈구장이었던 후지이데라 구장에서 4-3, 6-3, 도쿄돔에서 3-0으로 이긴 겁니다. 긴테츠 구단은 당시 천하의 요미우리를 상대로 1승만 더 거두면 우승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요미우리 구단은 그 때 까지 일본 시리즈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구단이 한 번도 우승은 고사하고 짐짝 취급 받는 구단에게 자존심을 헌납하게 되는 상황 직전 이었습니다.
그런데 3차전을 긴테츠가 이기고 나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투수가 ‘가토’라는 투수였는데 그 날 승리투수가 되어 인터뷰를 하는데 그만 이렇게 말을 한 것이죠.
“요미우리? 별 거 아닙니다. 오히려 롯데 타선이 더 무서워요.”
이게 기폭제가 되어서 요미우리 선수들의 투지를 끌어 올린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후 도쿄 돔에서 5-1, 6-0으로 이긴 요미우리는 원정길에 올라 3-1, 8-5로 뒤집기 쇼를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묘하게도 그 인터뷰를 한 가토 투수가 7차전 패전투수가 되었습니다.
01년 긴테츠 이테마에 (‘박살내버려!!’의 오사카 사투리)타선의 끝내기 만루 홈런 리그 우승
일본 프로야구 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힌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거는 설명보다 동영상으로 보시는 것이 더 감동적 일 듯합니다.
아래가 바로 그 동영상입니다.
(들어보시면 오바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인상적입니다.)
당시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한 이 팀은 드디어 12년 만에 리그 우승을 노리게 되었습니다. 2대 5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만루 찬스가 온 것인데 당시 감독이 기타가와 선수를 대타를 내었습니다. 사실 몸이 좋지 않아서 선발 라인업에도 빠진 선수였는데 그냥 단타 하나 쳐 내라는 기분으로 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그랜드 슬램으로 결말이 나 6-5로 경기를 뒤집고 리그 우승을 확정짓게 됩니다.
참고로 이 해의 긴테츠는 리그 최악의 투수력과 리그 최강의 공격력을 보여준 팀이었습니다. 방어율 4.98로 리그 최하위였는데 약한 투수력을 가공할 만한 장타력으로 메꿔버렸습니다. 포수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 2자리 수의 홈런을 기록하였고 (나카무라 노리히로-45홈런, 로즈-55홈런) 결국 210홈런이라는 숫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당시 리그가 ‘타고투저’라는 점을 감안해도 살인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 공격력을 바탕으로 75승 중 43승을 역전승으로 끌어내 ‘미라클 긴테츠’라는 말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01년도 일본 시리즈는 ‘후루타를 중심으로 한 야쿠르트의 방패냐 나카무라-로즈를 중심으로 하는 창이냐’로 관심이 모아졌지만 후루타의 노련한 리드 때문에 2차전 9점을 낸 것을 제외하고는 3점도 뽑지 못 하는 빈타에 허덕이다 1승 4패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그 당시 만루 홈런을 치고 뛰어다니는 모습의 기타가와 선수입니다.
제가 꼽는 동영상 베스트이기도 한 순간입니다.
(출처: 일본프로야구협회 홈페이지)
주요 선수는 누구보다 이 선수가 우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처: 일본프로야구협회 홈페이지)
바로 노모 히데오 선수입니다.
당시 뛰는 모습의 동영상입니다.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 대표로 나와 서울 올림픽 은메달을 수상하였습니다.
사회인 야구 소속 선수 출신입니다.
우리로 치면 예전의 포철이나 농협 출신의 선수였죠.
당시 프로선수 이후 처음 선발 등판이었는데 17탈삼진을 기록했죠.
노모 대 이치로입니다.
또 하나의 선수를 꼽자면 바로 이치로를 키운 코치입니다.
한국계인데 아라이 선수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교타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동영상 한 번 보시겠습니다.
이 팀은 구단 운영 적자가 눈에 띄게 불어나 결국 견디지 못하고 04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라집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04년 마지막이 된 버팔로즈 구단 팬들의 마지막 응원가를 담은 동영상입니다.
팬이 직접 찍어서 올렸네요.
이거는 방송에서 나온 게임의 일부입니다.
경기 거의 말미에 나오는 모습이네요.
오릭스도 블루웨이브라는 이름도 마지막이었던 순간입니다.
일본햄 파이터즈
창단연도: 1946
연고지: 삿포로
홈구장: 삿포로 돔 42122명, 야구, 축구 겸용경기장, 100m-120m-100m, 야구장에서 축구장으로 변하는데 5시간이 소요, 2002년 월드컵 때 독일 대 사우디아라비아(6월 1일), 이탈리아 대 에콰도르(6월 3일),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6월 7일)의 조별리그전이 있었음.
팀 전적: (2008년 10월 6일 기준) 3796승 4220패 313무 .474
리그우승: 4회 (1962, 1981, 2006, 2007)
일본시리즈: 2회 (1962, 2006)
팀 변천사: セネタース (세네터스) ( 1946 ) 東急フライヤーズ (도큐 플라이어스) ( 1947 ) 急映フライヤーズ (큐에이 플라이어스) ( 1948 ) 東急フライヤーズ (도큐 플라이어스) ( 1949~1953 ) 東映フライヤーズ (도에이 플라이어스) ( 1954~1972 ) 日拓ホーム・フライヤーズ (니타쿠홈 플라이어스) ( 1973 ) 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 (니폰햄 파이터스) ( 1974~2003 ) 北海道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 (홋카이도 니폰햄 파이터스) ( 2004~ )
야구장에서 축구장으로 바뀌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과 야구장의 모습. 삿포로 돔은 삿포로 시 외곽에 있습니다.
(사진 출처: 동아 엔사이버)
적지 않은 역사를 가진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하위권으로 더 많이 쳐져있었던 바람에 별 다른 성적을 내지 못 했던 구단입니다. 실제로 그런 좋지 않은 역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햄 파이터즈 홈페이지에 가 보면 삿포로 시절 5년간의 구단 역사만 찾을 수 있을 뿐 지난 60년에 가까운 기록들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 팀은 과거 도쿄가 본거지였는데, LG, 두산*두산, LG처럼 한 구장을 서로 다른 팀이 일정을 바꾸어서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같은 구장을 쓰는 다른 팀이 다름이 아닌 요미우리 자이언츠인 바람에 항상 관중부터 시작해서 성적까지 비교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나마 도쿄를 연고지로 하는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요미우리로 인해 반사이익을 누리기도 할 때가 있고 90년대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관중들이 많이 들어차기라도 했지만 일본햄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가 열리는 도쿄돔은 언제나 꽉 들어차지만 일본햄이 열릴 때의 도쿄돔은 절반 채우는 것도 힘들어 했었습니다. 저도 겪었지만 NHK에서 퍼시픽리그 경기인 일본햄 경기를 도쿄돔에서 하는 것을 보게 되면 텅 빈 구장에 나팔 소리만 크게 울려 퍼지는 경우가 많아 보기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찬밥 신세를 면하기 힘들게 되자 구단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연고지 이전입니다. 도쿄라는 이점을 성적이 좋지 못해 살리지도 못 했지만 누리지도 못 했던 이 구단은 03년을 끝으로 04년부터 삿포로로 옮기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홋카이도 주민의 70%가 설문조사 결과 당시 자이언츠 팬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더라도 거기서도 찬밥 신세가 되기 쉽지 않겠느냐’라는 이야기도 나왔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사실 홋카이도는 야구를 하기 적당하지 않은 지역입니다. 그것은 기후 탓인데, 여름이 길지가 않고 저녁이 되면 서늘하다 못해 때로는 춥다는 느낌마저 받는 동네여서 간혹 방문경기를 (자기 연고지가 아닌 곳에 가서 3일 서비스 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올 해 제주도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경기를 했었죠.) 갖는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야구에 목마를 수밖에 없었는데, 02년도 월드컵을 위해 삿포로 돔을 지으면서 기후문제를 해결하게 되었고 이것이 연고지를 옮기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하지만 연고지를 옮기면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일 야구교실 그리고 직장인들에게는 7시가 넘어가면 입장료를 반값으로 할인해 주는 행사 등 뿌리내리기 위해 온 힘들 다 하였습니다. 결국 이 지역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되면서 06년도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우승 07년도 리그 우승 및 일본 시리즈 준우승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일본햄이 가끔 요미우리 경기가 없을 때 방문 경기를 도쿄에 있는 일본햄 팬들을 위해 도쿄 돔에서 갖는 정도가 되었죠. 실제로 일본햄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도쿄돔 경기 일정이 잡혀져 올라가있습니다.
2003년에 삿포로에 갔을 때 현지 분들에게 들은 얘기로, 홋카이도 사람들의 두 가지 큰 바람이 프로야구단 확보와 신칸센 직통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제 이뤄, 우승까지 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요. (한솔로님 댓글 참조)
이 팀이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스타 선수는 무엇보다도 3000안타를 기록한 장훈 선수입니다. 백인천 선수와 같이 뛴 경험도 있는데, 타격 1위를 7회 달성을 하였습니다. ('61, '67∼'70, '72, '74년) 팀 내 통산타율(0.322)·통산 경기 출장 수(2,136)· 통산안타(2,435)· 통산홈런(414)· 통산타점(1,341) 등에서 역대 1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박성호의 일본 프로야구 참조) 물론 장훈 선수는 이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 멤버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기록도 하나 있는데 바로 경기 최다 실책 외야수 부분 3위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사진은 일본햄 전신 도에이 시절의 장훈입니다.
(사진 출처: 일본프로야구 공식 홈 페이지)
그리고 또 하나의 한국인 선수가 활약을 했는데 우리나라 야구 해외 수출상품 1호 백인천입니다. 지금도 모든 프로 야구팀에서 용병 포수는 포지션의 특성상 용병을 주전으로 활용하기는 힘들다는게 정설인데 언어와 문화 인종차별이란 장벽을 넘어 당당하게 성공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프로야구 원년 타격왕이시죠.
(데커드님 댓글 참조)
그리고 최근에는 2006년 시즌 후 FA로 옮기긴 했지만 오가사와라가 있었습니다.
사회인 야구 출신인데 내야수로 지명한 후 포수로 시작했다가
1루수-3루수로 옮기면서 대선수로 잘 성장시켰습니다.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시면 오가사와라 타격폼을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일본햄 시절의 모습의 사진도 있습니다.
http://www.inning.co.kr/bbs/zboard.php?id=board_kbo&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492
현재 오가사와라가 떠난 지금의 간판은 물론 다르비스 유 입니다.
(최형석님 댓글 참조)
일본햄 팀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재미난 기록이 있는데 바로 올스타전 최초 홈 스틸을 기록한 구단입니다. 그 선수는 다름 아닌 메이저에서 돌아와 입단한 신조 츠요시 선수인데 04년도 올스타전에서 나온 기록이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당시의 모습인데 포수인 한신의 야노 선수가 투수에게 공을 던진 순간을 노려서 들어왔다고 합니다. 신조 선수는 99년에 이어 04년 올스타 MVP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동영상도 첨부하였습니다.

(사진출처: 일본프로야구 공식 홈 페이지)
이 팀의 일본 시리즈 역사를 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점 한 가지를 꼽으라면 81년 일본 시리즈입니다. 당시 에나츠 유타카를 영입하여 리그 우승을 하였는데 상대는 같은 구장을 사용하는 (당시 고라쿠엔 구장) 요미우리 자이언츠였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더그아웃 시리즈였는데, 당시 2승 4패로 아쉽게 물러서야 했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당시 있었던 더그아웃 시리즈 2차전입니다. 자이언츠 감독으로 있는 하라가 6번 타자로 있는 것이 인상적이고 일본햄 투수의 시즌 성적이 15승 0패라는 것도 재미있는데 당시 ‘최고승률’로 올라갔습니다.
지바 롯데 마린스
창단연도: 1949
연고지: 지바
홈구장: 지바 마린스 스타디움, 30022명, 99.5m-122m-99.5m,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높은 외벽으로 둘러쳐져 있음.
팀 전적: (2008년 10월 6일 기준) 3817승 3714패 321무 .507
리그우승: 5회 (1950, 1960, 1970, 1974, 2005)
일본시리즈: 3회 (1950, 1974, 2005)
팀 변천사: 毎日オリオンズ (마이니치 오리온즈) ( 1950~1957 ) 毎日大映オリオンズ (마이니치 다이에이 오리온즈) ( 1958~1963 ) 東京オリオンズ (도쿄 오리온즈) ( 1964~1968 ) ロッテ・オリオンズ (롯데 오리온즈) ( 1969~1991 ) 千葉ロッテマリーンズ (지바 롯데 마린즈) ( 1992~ )
(우선 위의 동영상을 노래도 들어보시면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지만 한국 롯데 제품과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친숙해서 그런지 보면서 피식거리면서 웃었네요.)
이 팀은 1949년 당시 일본 유력 신문사인 마이니치 신문사에 의해 창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1969년 일본 롯데 기업이 인수를 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팀 명 마린스는 imbc 홈 페이지에 의하면 바닷가를 끼고 있는 도시를 연고지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해병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한국인이 운영을 하여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국계라고 알려지거나 한국인 선수들이 많이 뛰었던 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선수들 응원가를 들어보면 과거 코요테의 노래나 이정현의 '와'가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었죠.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NHK로 처음에 경기 응원가를 들으면서 속으로 '이것들이 이제는 응원가를 가지고 표절도 하나?'라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무식하니까 용감하게 저런 생각을 한 거죠.)
전에 말씀드렸지만 이 팀은 일본시리즈 초대 챔피언입니다. 신격호 회장님이 운영하는 기업인 롯데가 모기업이죠. 현재 차남인 한국 롯데그룹의 신동빈(일본명: 시게미쓰 아키오) 부회장이 구단주대행의 직책으로 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일본 롯데도 한국 롯데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돈 정말 안 쓰기로 유명한 팀이었습입니다. 성적이라도 좋으면 모르겠는데 성적도 보시다시피 그다지 시원한 팀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재미있게도 1950년에서부터 70년까지 리그 우승을 3번 했는데 각각 10년 주기로 한 것이 보입니다. 74년 일본 시리즈 우승을 하였는데 당시 주니치와의 일본 시리즈는 명승부 시리즈로 언급이 된다고 하네요. 물론 승수가 패수보다 많으니까 그나마 리그 3등 4등은 유지 하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만 87년부터는 거의 5등 6등을 도맡아 놓고 하는 구단이 되어버립니다. 그나마 투수력이 퍼시픽리그에서 괜찮은 팀이었는데 저 시기에는 팀 방어율이 4점대를 자주 기록하기도 하여서 숫자는 적지만 열광적인 팬들에게 그야말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스머프 유니폼, 챔피언 유니폼으로 알려진 롯데 오리온즈의 유니폼 디자인에 가네다 마사이치(김경홍) 감독이 아이디어를 낸것으로 알려지고있습니다. 어깨소매에서 부터 정강이 옆 까지의 굵은 선 말이죠. (헌터조지 님 댓글 참조.)
안 되겠다 싶어서 데리고 온 감독이 95년 외국인 감독이었는데 바로 지금 지바 롯데 감독인 발렌타인 감독입니다. 당시 지바 롯데에 이 사람이 처음에 와서 놀랬던 것이 ‘훈련의 양이 너무 많다’라는 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줄이고 (지금 한국의 로이스터 감독하고 상당부분 비슷하죠.)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훈련을 했는데 이게 처음부터 구단주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여간 시즌은 시작을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팀의 성적은 95년 리그 2위(69승 58패 3무)라는 성적을 찍어줍니다. 이렇다면 당연히 뛰어나신 외국 과외 선생님을 잡기 위해 구단 측에서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프런트와 감독 사이에 불화가 생겨나는 바람에 1년 만에 감독이 낙마 한 것이죠.
다시 이 팀의 성적은 다시 5,6 잘 해야 4등을 찍어주는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래도 팬들의 수는 적지만 열정적이어서 계속 응원을 했습니다만 98년에는 15년 만에 리그 타이 기록인 15연패를 7월 4일 기록하였고 결국 18연패까지 간 후에야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팀의 매니져는 다시 한 번 발렌타인 감독에게 손을 뻗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거포 이승엽 선수도 지바 롯데로 흘러갔죠.
당시 기억에 남는 기사가 한 고참 선수의 인터뷰였는데 너무나도 자주 하위권에 머물다 보니까 인터뷰 내용이 “우리도 주목받고 싶다”였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한 팀당 따라다니는 전담기자가 있고 스타플레이어를 따라다니는 전담 기자가 따로 있습니다. 때문에 요미우리의 경우 이 팀이 움직일 때 마다 따라다니는 기자가 거의 수 십 명에 이릅니다. 스타플레이어를 쫓아다니는 기자는 선수를 따로 공부해야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바 롯데의 경우 팀 성적도 바닥이고 인기도 없는 팀이었기 때문에 많아야 7,8명이었죠. 게다가 한국에서 온 거포가 (자기들 눈에는 아직 보여 준 것 없는 신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기존에 있던 선수보다 더 관심을 모으니까 그게 아무래도 거슬릴 수 밖에 없겠죠.
아무튼 이 팀은 2004년 막판까지 포스트 시즌 경쟁을 하였지만 일본햄에 0.5게임차로 밀리면서 4위로 아쉽게 마감합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 05년도는 도대체 이 팀이 과거에 비실대던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변신을 하게 됩니다. 개막 2일째 되는 게임이었던 3월 27일 무려 26점을 쏟아내면서 구단 신기록을 만들어 냅니다. 저 숫자는 그래서 영구결번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롯데 홈 더그아웃을 보면 26번이 달린 유니폼이 걸려 있습니다. 올스타게임에서는 10명이 뽑히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이승엽 선수가 올스타전에서 상을 타기도 하였죠. 05년도의 마린스는 타선이 고정되는 날이 한 번도 없었는데 현지에서는 ‘보비 매직’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팀은 고정타순 없이 한신과의 일본시리즈에서 33점 (한신 5점)을 뽑아내는 맹폭격을 앞세워 일본 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당시 지바에 원정응원을 온 한신 팬들이 너무나도 어이없고 무기력한 타선에 분노한 나머지 지바 구장에서 행패 부렸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이 팀은 어느 정도 꾸준히 성적을 찍어주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올 해 발렌타인 감독과의 계약 기간이 끝이 나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는데 05년 1위, 06년 4위, 07년 2위, 08년 4위를 마크하였는데 과연 구단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
주요 선수는 저번 WBC때도 나왔지만 이제는 동양권 야구에서도 거의 없는 잠수함 투수인 와타나베 슌스케 선수입니다.
손 등이 지면에 닿을 듯 말 듯 하게 던지는 폼이 인상적이죠. 한 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투수입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장훈 선수가 바로 지바 롯데에서 3000안타를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요미우리에서 퇴단 후 80년, 81년 선수 말년에 잠시 뛰었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감상 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반부에 장훈 선수가 헬멧을 던지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당시 요미우리가 한국인이 대기록을 요미우리에서 작성하게 하기 싫다고 해서 내 보내려고 했는데
당시 동료인 왕정치가 제발 남겨달라고 사정을 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롯데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죠.
(사진출처: 일본프로야구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현재 주니치 감독으로 있는 오치아이 선수도 바로 롯데에서 활약을 했던 선수였습니다.
도어 스윙 (door swing) 타법으로 유명했던 선수입니다.
그리고 아주 개성이 강한 선수로 유명했는데 '오치아이 야구박물관'을 운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본 롯데에서 8시즌 동안 활약을 하였는데 82, 85, 86시즌 타격 3관왕을 (타율, 타점, 홈런)
3번 차지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니치 시절 한일 슈퍼게임에도 출전을 했던 선수이기도 합니다.
당시 타격폼이 한국에서도 없는 폼이어서 아이들이 야구 배트를 잡고 다 한 번씩 흉내내었던 선수이기도 하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치 검도에서 무사가 검을 잡고 있는 듯한 모습같습니다.)
그리고 댓글에도 달렸지만 무라타 죠지라는 선수 역시 유명한 투수입니다. 무려 23년간 (1968-1990) 선수생활을 롯데에서 하였는데 통산 215승 177패, 2,363탈삼진을 기록하였죠.
도끼투구법(마사카리)으로 유명한데 처음에 보았을 때 얼핏 최동원 선수가 그냥 저는 연상되기도 하였습니다. 무라타는 헌터조지님께서 어린시절 심야 mbc 해외 야구 하일라이트에서 처음 보았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시네요. 당시 해설자가 이 선수가 일요일 성적이 유난히 좋아서 "썬데이 죠지"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했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무라타 죠지 선수가 선수 은퇴 후 마스터스 리그 (OB선수들이 모여 뛰는 리그입니다.)
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인데 나이가 50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130이 넘는 공을 뿌려대는
장면입니다.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그만큼 몸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는 증거죠.
그리고 한국계 선수인 아리토 미치요가 있었는데
과거 롯데가 약했을 때 혼자 팀을 이끌다시피 한 선수입니다.
당시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이후 최고의 3루수라는 평가를 받은 선수입니다.
일본에서는 '미스터 롯데'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선수이죠.
(이 선수는 어떻게 제대로 된 동영상 하나가 없네요.)
아래 사진은 현재 롯데 마린스가 쓰고 있는 홈구장입니다.
외벽에 둘러싸인 야구장이 인상적입니다만 바로 옆에 바닷가가 있습니다.
때문에 바닷바람이 거세서 홈런을 많이 손해보는 구장 중 하나입니다.
이승엽 선수도 지바 시절 여기서 홈런 몇 개 까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출처는 구단 홈페이지. 외벽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출처는 구단 홈페이지. 바깥에서 본 구장의 모습.)
(이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발렌타인 신사입니다. 구단 홈페이지에서.)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창단연도: 2004년 10월 29일
연고지: 토호쿠 센다이 시(市)
홈구장: 크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구장 네이밍 마케팅 때문에 이름을 저렇게 해 놓았네요.)
1950년에 완공. 2005년 리모델링을 하여 사용 중.
구장의 모습은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inning.co.kr/bbs/zboard.php?id=board_kbo&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462
팀 전적: (2008년 시즌 종료 기준) 217승 333패 10무 .395
리그, 일본시리즈 우승: 없음
자본금: 4억 엔
종업원 수: 200명 (2007년 9월 현재)
팀 변천사: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 (토호쿠 라쿠텐 골든 이글스) (2005~ )
(역사가 짧기 때문에 조금 자질구레한 내용을 채웠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스와 긴테츠 버팔로스의 합병 이 후 나타난 구단입니다. 당시 오릭스와 긴테츠에서 버림받은 선수들을 모아 만들어 한 때 ‘쌍방울 레이더스’같은 느낌도 났지만 작년시즌 4위를 기록하면서 조금씩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올 시즌에는 한 때 A 클래스 진입도 노렸습니다만 뒷심이 부족한지 그만 5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 팀은 05년도에 다오 감독이 취임을 했는데 당시 성적이 38승 97패를 기록을 하였습니다. 때문에 100패를 기록 하느냐 안 하느냐로 말이 나오기도 하였는데 97패에서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구단 첫 해 흑자를 기록하면서 성적은 비록 형편없지만 구단의 자생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게 평가받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퍼시픽리그의 관중 수는 센트럴리그의 4분의 3밖에 되지가 않아 리그의 자생력에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하였습니다. 퍼시픽리그 최고 구단인 세이부와 다이에(현 소프트뱅크)의 중계권료가 요미우리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면서 자칫 잘 못 되면 리그가 붕괴된다는 말도 나오기도 하였죠.
때문에 당시 구단을 통합하면서 10구단 1리그 체제로 만들자는 말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선수협회장이 후루타 선수였는데 여기저기 돌면서 양대 리그 제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여기저기 홍보를 하였던 장면이 눈에 선하네요.
그렇지만 취임한 지 1년 만에 감독은 노무라 감독으로 바꾸면서 상당한 비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신문에서 ‘인터넷 속도만큼 참을성이 정말 없다.’라는 비아냥거리는 기사를 한국의 스포츠 신문 기자가 번역해서 올려놓은 구절이 기억이 나네요.
아무튼 노무라 감독이 취임하고 난 후 이 팀의 06년도 성적은 다시 6위를 기록합니다.
하지만 07년부터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결국 4위로 올라서면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급부상하기 시작합니다.
이 팀의 모 기업은 ‘라쿠텐’이라는 인터넷 상거래 회사입니다.
얼마 전에 구단 모기업 소개하는 글에도 올렸습니다만,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회사입니다.
한 때 포르노 사이트도 운영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낭설이었나 봅니다.
아무튼 라쿠텐 트레블, 옥션 사이트 등등 상당히 많은 자회사 사이트도 존재하고 있는 구단이기 때문에
돈이 조금 풍족하지는 않지만 구단의 구색을 갖추거나 하는데 별 지장은 없어 보이는 듯 싶습니다.
상징물인 ‘골든 이글스’는 토호쿠 지방에 독수리가 많다는 점을 착안하여 만들었습니다.
주요 선수는 이와쿠마 히사시, 다나카 마사히로로 이어지는 원 투 펀치와 우리나라 SK에서도 활약을 한 페르난데스 선수 그리고 늦은 나이에 다시 회춘한 39세의 야마사키 다케시 선수입니다.
야마사키 선수는 주니치 시절 한국인 3총사와 주니치 시절 같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한 선수입니다.
07시즌 최다 홈런 (43) 최다 타점 (108)을 기록하였죠. 올 시즌 26홈런에 80타점을 기록하였습니다.
투수진은 무엇보다 이와쿠마 히사시 선수가 가장 눈에 보입니다. 이번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는데 오히려 한국 입장에서는 안 나온 것이 좋았다고 봐야겠죠. 04시즌 승률왕을 기록하였고 올 시즌 21승 4패 1.82를 찍어주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속구가 장기입니다만 몸이 호리호리하여 볼이 가볍다는 점이 단점인 투수입니다. 때문에 직구 구속이 좋기는 합니다만 변화구를 생각보다 많이 섞어서 던지는 편인 투수입니다. 09년 WBC에 제가 볼 때는 뽑힐 확률이 높은 선수라고 봅니다.
본래 구단 합병 때 합병된 구단에서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본인이 완강하게 거부해서 라쿠텐으로 넘어간 경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2중 투구 금지 조항으로 인해 투구폼을 교정하느라 05년도 9승 15패를 찍어버렸고 부상도 있어서 06년도는 1승 2패에 그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올 시즌 보여준 저 성적만으로도 완벽하게 부활했다고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이와쿠마가 긴테츠 시절에 가지고 있는 투구폼과 현재 던지는 모습입니다.
현재는 2중 모션은 아니지만 발을 올려서 차는 폼을 놓고 보았을 때 완전히 2중 동작을 버리지는 못 한 듯싶습니다.
긴테츠 시절의 이와쿠마 2중 동작의 투구폼.
아래 동영상은 올 해 10삼진을 기록한 경기인데 MBC에서 중계를 하기도 한 경기입니다.
또 하나의 선수 다나키 선수는 작년 시즌 11승 7패 올 시즌 9승 7패를 기록하였는데 승운이 따르지 않아 시즌 내내 고생했다는 후문입니다. 구속은 150대 초반까지 찍어 줄 수 있는 투수인데 과거 세이부 시절의 마츠자카를 연상하시면 될 듯합니다. 슬라이더와 떨어지는 구종으로 타자를 상대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 일본 팀 분석에서 제가 올렸기 때문에 많이 적지는 않겠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13 탈삼진을 잡는 모습입니다.
슬라이더가 좋다고 댓글에 누가 달아놨네요.
이거는 라쿠텐 구단과 한국과 연관되어 있는 일에 대한 쿼터메인님의 댓글입니다.
조금 이른 이야기지만 한신과 요미우리가 아니라 이 팀이 요코하마와 더불어 한국 선수들의 스카우팅 망을 가장 크게 보고 있는 팀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의 삼성과 우여곡절 끝에 FA 계약을 했지만 임창용이 2년에 5억엔을 제의 받았었고, 올 해 이 팀의 한국파트 담당자인 송일수씨가 한국 선수들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선수로 손민한과 김동주를 거론하면서 립서비스형태의 이야기였지만 일본에서도 분명히 통한다라는 이야기를 건내며 선수들의 파악을 자세히하고 갔다라는 부분이 기사화 되기도 했습니다. KIA의 케인 데이비스 역시 이야기 되었었구요. 라쿠텐의 다나카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데, 이 팀에 올해 한국인 선수들이 몇 명이 보강될지 궁금합니다. 보강 파트로 크게 나오는 부분이 선발 투수 1명은 확실하게 이야기가 되나 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몇 자 적겠습니다.
올해 한신에서 이대호를 주목하고 보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락텐과 다른 팀이지만 한신에 대해서 적어보자면, 이전에 FA인 박명환에게도 한신은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박명환은 한신의 선발 투수로 거론하던 언론들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한신의 1~3선발이 아니라 5선발로 박명환을 봤었고, 5선발과 스윙맨을 겸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검토가 들어갔다라는 이야기가 되었던 기억도 납니다. 더불어 박명환이 과연 일본에서 선발이 아니라면, 마무리 앞에 있는 선수로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한신에서도 한국 선수들에 대한 영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과거 이종범이 일본에 있던 시절, 한신이 최종 도착지가 될 것이다라고 했었는데(주니치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로 간다 어떻게 한다하다가 KIA 입단하던 기억도 나네요.
이상으로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후기: 박성호 님이 필진으로 오신다고 들었는데
그 분이 오시면 일본야구가 어떤지 제대로 보여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글을 작성하면서 그런 필진이 한 분 정도 계셨으면 했는데
이닝 주인장님께서 가려운 부분을 바로 긁어주셨더군요.
아무튼 그 분을 제한적으로라도 이곳에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글을 쓰면서 일개 개인이 우리의 것도 아니고 남의 것 그것도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일본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해서 적는다는 것이 좀 무모하다고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나마 일본어라도 잘 알면 좋을 텐데 한자 몇 자 읽고 판단하고
그거를 우리나라 블로거들이나 개인 사이트 운영하시는 분들의 것과 확인해 가면서 쓸려니까
중간에 그만 둘 생각도 했는데 반 오기로 꾸역꾸역 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완벽하게 쓰고 싶은데 여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읽어주시고 격려를 주셔서 감사드리고
댓글로 부족한 부분 메꿀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부끄럽지만 이 글을 일본 야구에 대해 궁금하신 이닝 입주민 분들
그리고 처음 일본야구를 접하시거나
이닝에 처음 가입 하셔서 오시는 분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 by | 2008/12/08 15:05 | NPB | 트랙백 | 덧글(1)


































